IBM은 누구나 아는 IT 업계의 강자이다. 컴퓨터가 없던 세상에 메인프레임을 공급하며 세계 최고의 컴퓨터 회사가 되었고, 이후 다가온 PC 세상에서도 애플에 맞서 IBM 호환 기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리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2009년까지만 해도 IBM은 세계 최대의 IT기업이자 세계에서 45번째로 큰 기업이었다. 그런데 그런 IBM의 최근 모습을 보면 현대판 골리앗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암을 치료한다고 매체마다 전면 광고를 내며 선전했던 인공지능 왓슨은 마케팅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게 드러났고, 사업의 핵심이었던 PC와 서버 사업은 중국 회사 르노보에 매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디지털 전환의 중심인 클라우드 사업에서도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 들러리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IT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IBM의 내부 이메일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업계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런 IBM의 쇠퇴는 재무 결과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IBM의 매출은 28% 감소했고, 수익 역시 41% 감소했다. 빚은 40조 원 이상 증가했다. 이러니 주가가 44% 떨어진 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IBM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IBM의 쇠퇴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대개 지적하는 문제는 업계의 변화를 제대로 내다보는 비전이 없었다는 것과 초 스피드로 변화하고 있는 경쟁 환경에 대응하지 못한 느린 내부 조직체계이다. 세상이 클라우드로 전환되면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기 보다 사용료만 지불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데 기존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패키지 판매에 길들어져 있던 IBM은 클라우드 기술 개발을 제 때 하지 못했고, 그나마 시장을 읽은 관리자가 클라우드 개발을 하려고 해도 거대 기업의 조직 문화가 걸림돌이 되어 속도를 내지 못했다. 눈이 흐려져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고, 총을 든 적 앞에서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는 골리앗과 닮은 꼴이 아닌가.
작년 IBM의 CEO로 선임된 아빈드 크리슈나는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중심의 사업전략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IBM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오랜만에 연구 부분 출신이 CEO가 되어 시장에서도 기대를 하는 것 같다. 과연 크리슈나가 IBM의 기업문화를 쇄신하고 과거 IT 업계의 리더 위상을 되찾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