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높은 고도에서는 물리적 매개변수가 달라져 맛인지 감각이 지상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공기의 무게가 누르는 힘인 기압은 고도가 높을수록 낮아진다. 기압이 낮은 산정상이나 비행기 안에서는 미각이 바뀔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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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비행기가 점점 고도를 높여 올라가면 기내 공기는 건조해지고, 습도가 떨어진다. 기압, 소음 등 다양한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감소한 압력이 우리 몸에 영향을 주고, 혈액의 산소 포화도가 줄어 후각·미각 수용체의 효율성이 줄어든다. 항공기 소음과 기내라는 특수한 환경이 심리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도 있다.
복수의 외국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 미각은 후각, 시각, 촉각 자극 등 다양한 감각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기내 소음이나 객실 사용과 같은 특정 환경에서 단맛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졌다. 반면 감칠맛은 더 잘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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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라운호퍼 물리학연구소의 실험 결과에서도 대상자들이 짠맛은 20~30% 덜 느끼고, 단맛은 15~20% 덜 느꼈다. 반면 과일 향과 산에 대한 반응은 안정적인 경향을 보였다. 단맛, 짠맛은 덜 느끼지만, 감칠맛은 강화되거나 기존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실제 이러한 현상을 이용해 기내식을 구성할 때 삶은 채소를 넣어 감칠맛을 더하기도 한다. 비행기를 타면 토마토 주스를 찾는 이들이 많거나 산미가 있는 식품이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산정상에서 컵라면을 먹으면 더 맛있는 것은 운동에너지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산 정상까지 가는 과정에서 쓴 에너지를 다시 채운다는 점에서 음식 맛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정재훈 약사는 “고도가 높으면 기압이 낮아 감칠맛은 그대로 유지되거나 더 잘 느끼고, 다른 맛은 덜 느끼게 될 수 있다”면서 “산 정상에 올라가면 에너지를 쓴 이후이기 때문에 라면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러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맛은 주관적인 영역이고,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연구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은 “(연구결과들도 있지만) 영향을 얼마나 받겠는가”라면서 “산 정상에 올라가면 배고파서 맛있고, 기내에서는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기내식이 맛있게 느껴진다는 단순한 영향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