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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가 부른 `화(禍)`..도쿄전력의 원죄

박기용 기자I 2011.04.01 15:06:07

잇단 경고 무시..대지진 10% 확률이 `낮은 위험`으로
`수소폭발` 환기설비도 무시..노후설비 연장만 `골몰`

[이데일리 박기용 기자]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운영사인 도쿄전력에 결국 공적자금이 투입될 전망이다.

미국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30여년만의 최악의 방사능 누출사고로 인한 배상액은 1300억달러(143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민영기업으로선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 결국 일본 정부가 개입하게 된 것이다. 

도쿄전력은 또 지난달 11일 발생한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에 대한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방사선 누출이 사실상 인재이며, 일본 정부의 기간산업 민영화 정책이 초래한 `화(禍)`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 공기업의 민영화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잇단 대지진 경고 무시..10% `매우 낮은 위험`

▲ 도쿄전력 CI
1일 로이터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지난 2007년 이후 자사 연구진의 보고를 포함해 잇단 대지진 경고를 반복적으로 무시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7년 도쿄전력의 안전 책임자인 사카이 도시아키가 이끄는 도쿄전력 쓰나미 연구진은 그해 6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국제 원자력기술 컨퍼런스에서 "쓰나미는 본래 불확실한 자연현상으로, (원전의) 설계기준 높이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이 위치한 곳은 과거 400년 동안 규모 8 이상의 지진이 총 4차례 일어난 곳이다. 1611년과 1677년, 1793년, 1896년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으며, 도쿄전력 연구진도 이를 알고 있었다.

연구진의 결론은 향후 50년 내에 5.7미터인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설계규모를 넘는 쓰나미가 발생할 확률이 대략 10%일 것이라는 것. 하지만 일본 원자력 규제 당국은 이를 `극단적으로 낮은 위험`으로 보아 원전 운영 주체인 도쿄전력에 대비를 맡겨버린 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일본 원자력안전위원회(NSC)의 1992 정책지침에 따르면 일본의 원전이 방사능을 누출시킬 만큼의 심각한 훼손을 입을 가능성은 185년마다 1번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1992 정책지침`은 이 때문에, "도쿄전력을 비롯한 발전소 운영 사업자에게 비상대응 계획을 맡기는 것이 최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 규제 당국이 민간사업자의 자율권한을 이유로 위험 대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것이다.

◇ `수소폭발` 환기설비도 10여년전 이미 경고

일본 내 원자력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규제 당국 중 하나인 원자력안전보안원(NISA)도 지진에 따른 원전의 환기설비 파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이를 도쿄전력 측에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원자력 발전소는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환기설비를 대폭 강화해왔다. 반면 일본 규제 당국은 1992년 지침에서 발전소 운영사들이 이를 결정해야 한다며 이런 시스템 도입을 외면했다.

환기설비는 발전소 내부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한 최후수단 중 하나다. 환기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 발전소는 폭발로 날아가기도 한다. 이는 25년 전 체르노빌 사고에서도 경험한 일로, 이 때문에 미국의 원전 환기구는 내부의 폭발 압력에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총열` 모양으로 설계돼 있다.

▲ 도쿄전력측은 지난달 30일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 폐쇄 방침을 밝혔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가쓰마타 쓰네히사 도쿄전력 회장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의 원자로인 마크 1에 대해서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안전 설계가 변경돼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한 채 환기구의 재질을 판금으로 바꾸었을 뿐이다. NRC가 1998년 11월 재차 판금환기구가 원자로 건물을 수소폭탄으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했다.

미국과 유럽은 20여년전부터 항공기 추락이나 미사일 직접공격 같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나타날 수 있는 피해를 예상해 대비책을 꾸리는 방식으로 원전 위기대응 체계를 보완해왔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위기 대응보다는 주로 노후화된 원전의 운영과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잡아내는 일을 더 강조했다.

◇ 노후설비 연장에만 골몰..위기대응 `소홀`

NISA도 지난 2005년과 2006년 앞서 지적된 문제점을 반영해 개정된 비상지침을 발행했지만, 이를 실제 적용하는 데엔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40년 동안 사용한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 1호기의 수명 연장 문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원전을 이용한 전력 생산량을 지난 2007년의 두 배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14기의 신규원전 건설과 함께 기존 원전들의 생산량을 늘려 더 오랫동안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운영수익 문제에 골몰해 있는 민영기업 도쿄전력으로선 당장 발생할 운영상의 결함에만 대응하는 소극적인 접근 방식을 굳혀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최근 4년 동안 일본 내 원전에선 총 4차례의 비상발전기 사고가 발생했다. 2007년 6월 이번에 문제가 된 후쿠시마 제1원전의 4호기에서 회로 차단기의 문제로 비상발전기 화재가 발생했지만, 사고 보고서는 "이와 유사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으므로, 다른 발전소와 이 상황을 공유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2008년엔 후쿠시마 원전의 안전점검반에 17살의 근로자를 불법 고용했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모두 위기 대응보다 운영 수익에 골몰한 민영기업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들이다.

원자력 안전정책을 연구한 시로야마 히데아키 도쿄대 교수는 "관료들은 이번 대지진과 같은 상황을 `예상 밖`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이 원래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며 "이는 단지 규제 당국과 도쿄전력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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