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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조사관제 시행 두달…"교사 업무부담 여전"

김윤정 기자I 2024.05.13 13:18:36

"교사 학폭업무 부담 줄인다" 취지에 신학기부터 운영
"조사 시에는 교사 동석 요구…학폭 업무 부담 여전"
학폭 조사관 파견 기다리다가 사안 처리 지연되기도
"경미한 학폭, 조사관 판단없이 학교 자체 종결권을"

[이데일리 김윤정 기자] 학교폭력(학폭) 전담 조사관 제도가 시행된 지 2개월을 넘기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사들의 학폭 업무를 경감하기 위해 전담 조사관 제도를 도입했지만 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조사 과정에 교사가 동석해야 하거나 조사관의 업무 보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3일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는 지난 3월 신학기부터 시행됐다. 퇴직 교원·경찰관 등 교육지원청 소속 조사관이 학폭 조사 업무를 맡도록 한 것이다. 지난달 기준 조사관 수는 전국적으로 약 1880명이다. 이들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경미한 사안은 피해 학생 동의를 얻어 학교에서 자체 종결하고, 중대 사안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된다.

그간 교사들은 학폭 업무 부담을 토로하며 관련 조사 업무를 외부기관이 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학폭 사안 조사부터 보고·처리에 이르기까지 업무 부담은 물론 가해·피해학생 양측으로부터 갖은 민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올해부터 학폭 전담 조사관제도를 도입했지만 교사들의 학폭 업무 부담은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사동석, 학교장 판단에 따라…“부담 여전”

교육부의 2024학년도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따르면 ‘조사관의 사안 조사 시, 교원의 협력 방법(동석 등)은 관련 학생의 심리적 상태, 나이, 성별, 사안의 성격 및 조사관의 요청 등을 고려해 학교장이 판단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인천의 중학교 A교사는 “학교장 재량이라지만 암묵적으로는 학폭 조사 과정에 교사가 동석하거나 참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외부 조사관이 방문한 상황에서 학생만 조사실에 두고 갈 수는 없으니 학생 보호 차원에서 동석하라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교사가 학폭 조사관 업무를 지원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폭 책임교사를 맡고 있는 B교사는 최근 조사관이 학생을 만나기 전 2시간 정도 조사관과 따로 면담했다. B교사는 “학폭 조사관제 시행으로 직접적인 조사 부담은 덜었지만 조사관 보조 업무가 새로 생겨났기에 결국 학폭 관련 업무부담이 줄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반면 학폭 조사관들은 교사들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수도권에서 활동 중인 C조사관은 “외부인으로서 조사의 공정성, 피해·가해 학생 분리 원칙 등을 고려해 조사하려면 교사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육지원청 소속인 조사관들은 여러 학교에 파견되는 탓에 개별 학교의 사정을 교사들만큼 알지 못한다. 더욱이 학교 방문 조사 외에는 개별 접촉이 금지되고, 조사 시에도 피해·가해 학생이 마주치지 않게 ‘분리 원칙’을 준수하려면 교사 도움이 필수라는 얘기다. C조사관은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조사관만 있는 공간에선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에 교사 동석이 도움 된다”고 덧붙였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 도입 이후 학폭 사안 처리 절차 개선안. (자료 제공=교육부)
“경미안 사안, 자체 종결권을” 요구도

학폭 조사관 파견을 기다리다가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도 있다. 수도권의 초등학교 D교사는 “학폭 조사관 파견을 수일간 기다리면서 학생들의 기억이나 증언이 오염돼 처리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학교에서 교사가 직접 학폭 조사 업무를 진행할 경우에는 즉각적 대응이 가능했지만 제도 도입 이후에는 교육지원청에 조사관 파견을 신청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경미안 학폭 사안도 조사관의 판단을 거쳐야 해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불만이 크다. 교육부는 학폭 조사관제도를 도입하면서 학교 자체 종결이 가능한 경미한 학폭도 조사관의 조사 결과서를 토대로 이를 결정하도록 했다. 인천의 중학교 E교사는 “학생들이 화해한 후에도 사안을 끝내지 못하고 조사관 파견을 기다려야 했다”며 “초기에 사과·화해로 마무리할 수 있는 작은 다툼도 시간을 오래 끌면 점차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의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 교육청 차원에서 여러 수단을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시·도교육청별로 교사 부담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학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60% 가량이 희망 시에만 조사관을 투입해달라는 의견이 많았다”며 “조사관 제도 도입 목적이 학교·교사의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기에 이런 여론을 반영해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학교 현장의 교사들이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직접 담당하면서 악성 민원, 학부모 협박 등의 어려움을 호소해 온 데 따라 이를 개선하고자 교육부가 도입한 제도로 올해 신학기부터 시행됐다. 학교폭력 발생 시 이를 조사하고 학교폭력 사례 회의에 참석해 결과를 보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로 퇴직 경찰이나 교직 교원이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으로 위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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