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바이올린 여제' 율리아 피셔 씨, 거기서 뭐하세요?

이정현 기자I 2019.03.08 11:07:49

런던필하모닉과 멘델스존 협연에 이어
객원단원으로 무대…브람스 깜짝 연주
열정으로 벌인 이벤트에 "또다른 재미"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가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고 있다(사진=빈체로).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1부가 끝났다. 15분 남짓한 짤막한 인터미션. 관객들은 금발의 바이올리니스트의 현란한 현의 움직임에 혀를 내두르며 잠시 일어났다. 1부에서 선보인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꽤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힐러리 한과 재닌 얀센과 함께 21세기 바이올린계를 이끌어갈 ‘현의 여제’라 불리는 율리아 피셔다.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그의 퇴장을 말렸다. 한 곡은 울림을 받기에 충분했으나 또 아쉬웠던 모양이다.

7일 천재 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롭스키와 그가 이끄는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열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모습이다. 이들이 준비한 2부는 브람스의 ‘교향곡 2번’. 박수로 단원들을 맞았고, 어느새 무대가 꽉 찼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제1바이올린 파트의 뒷자리, 오케스트라 단원 사이에 몸을 숨긴 익숙한 외모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보인 것이다. 누군가는 ‘설마’라고 했다. 그런데 맞았다. 1부를 장식했던 피셔가 객원 단원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것.

공연을 기획한 빈체로의 한 관계자는 “1부에서 협연한 율리아 피셔가 객원 단원으로 2부에도 함께했다”며 “사전에 조율한 게 아니라 현장에서 급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피셔 본인이 함께 공연하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드레스를 갈아입은 데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자리한 터라 일부 눈치 빠른 관객만 알아챌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 유롭스키가 이끄는 런던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하고 있다. 제1바이올린 파트의 마지막 줄 노란색 동그라미 안이 율리아 피셔다(사진=빈체로).


자신의 연주를 보러온 이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다. 공연이 끝난 협연자가 오케스트라에 객원으로 함께하는 경우는 왕왕 있었으나 흔한 사례는 아니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종종 비슷한 이벤트를 벌였고,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도 2017년 서울시향과 협연을 한 후 객원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류태형 클래식평론가는 이날 이데일리에 “클래식 공연을 즐기는 또 다른 재미다. 무대에 오르는 피셔의 성실함과 헌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피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굉장한 팬서비스가 됐을 것”이라 말했다.

피셔는 200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에서 연 공연 1부에서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2부에서는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로 잇는 등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로서의 역량을 한꺼번에 자랑하기도 했다. 세 살 때부터 음악을 해온 팔방미인이자 음악애호가인 면모를 한국 공연에서도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빈체로 관계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바이올린 켜는 걸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본 공연의 수준도 높았다. 류 평론가는 “피셔와 런던필이 함께한 ‘멘델스존 협주곡’은 흡사 강철로 만든 무지개 같았다”며 “발휘하는 서정성의 근간에 튼튼한 구조적 토대가 놓여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블라디미르 유롭스키는 런던필을 완전히 자신의 악기로 길들였다”며 “기존의 독일적 연주를 평면적으로 만들 만큼 입체적이고 극적인, 참신한 해석을 내놓았다”고 했다. 피셔가 객원 단원으로 함께한 브람스 ‘교향곡 2번’도 남달랐다며 “햇볕이 쏟아진 전원에서 브람스 특유의 암막 커튼을 칠까 걷을까 망설이는 유롭스키의 고민이 스쳤다”고 표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