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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 성장 최대 걸림돌"…박승 前 총재도 지적

경계영 기자I 2016.09.02 12:00:00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조찬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2일 오전 머리가 희끗희끗한 팔순의 노신사가 설렘과 긴장이 섞인 표정으로 한국은행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최고 수장이었던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였다. 임기를 마치고 총재직에서 물러난 지 10년 만에 이번에 강연자로서 한은 간부 직원들 앞에 섰다. 전임 총재는 창립 기념 등 행사 때마다 참석하곤 했지만 조찬포럼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전 총재는 이날 한은 간부들에게 2시간 가까이 ‘한국경제 성장환경 변화와 정책 대응’을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포럼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많은 기자와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10년 만에 처음”이라며 반가워했지만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소신을 쏟아내며 날을 세웠다.

◇“저출산·고령화, 우리 경제 최대 성장 걸림돌”

“지금 한국의 경제 위기는 성장률이 어떻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잠재성장률이 2~3%까지 떨어져있고 앞으로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활력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박 전 총재는 그러면서 우리 경제의 최대 성장 걸림돌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꼽았다. 그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우리 국민이나 정부가 당장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장기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 전망이다. 국제연합(UN)에 따르면 현 합계출산율 1.24명이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 총인구는 올해 5000만명에서 2070년 4000만명으로 줄어든다.

이는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달 30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우리 경제의 장기 과제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제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게 박 전 총재의 판단이다. 그는 “인구가 줄면 음식점 주유소 노래방 골프장 세금 할 것 없이 모든 부문이 줄어들게 된다”며 “수요가 줄어드니까 그 값이 떨어지고 이게 바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면 결혼하는 것이 결혼 안하는 것보다 더 유리하고 아이를 안 두는 것보다 두는 것이, 그리고 (아이) 한명 두는 것보다 세명 두는 것이 더 이익이 되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며 “이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박 전 총재는 출산율을 늘릴 수 있도록 여성이 직장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불이익 받지 않도록 조치하고 결혼을 장려할 수 있도록 저소득 신혼부부 맞춤형 장기 저리 임대주택을 짓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박 전 총재는 “한국은행은 물가안정뿐 아니라 폭 넓은 국가 경제에 관심 둘 필요가 있다”며 “10, 20년 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관은 중앙은행”이라고 했다.

◇“가계, 성장 이끌 주체…똑같이 보호해야”

박 전 총재는 당장 우리 경제가 직면한 문제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국민소득은 수출과 투자, 소비로 구성돼있는데 수출과 투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낡은 엔진”이라고 비유했다. 경제 성장을 이끌 소비를 하는 주체인 가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수출과 투자가 성장을 주도할 땐 수요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생산만 하면 됐다”며 “외국에서 외채를 얻어다 대기업으로 하여금 투자하도록 하고 가계는 소비를 줄여 저축하고 대기업 투자자금을 대주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은 성장을 이끄는 기관차, 가계는 성장 바람을 빼는 누출로 봤다는 것.

“수출이 마이너스(-)가 되고 두자릿수로 증가하던 투자가 1년에 3%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습니다. 이제 투자와 수출에 맡겨서는 2%대 이상 성장이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3% 성장해야 하는데 누출로만 봤던 소비 밖에 없습니다.”

박 전 총재는 “(경제성장을) 가계와 대기업이 함께 쌍끌이해야 하고 이들을 함께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대표적 사례로 전기요금 누진제를 꼽았다.

그는 “한국전력의 생산원가는 킬로와트(㎾)당 113원인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구간마다 달라 정확하진 않지만 81원, 가정용은 4구간 평균 기준 281원 받는다”며 “한전은 산업용에서 밑지고 가정용을 많이 받아 대기업 보조금을 줘서 적자를 메우고 올해 14조원 이익을 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구도에 대해 그는 “전형적으로 구시대적인 모델”이라며 “산업용과 가정용이 다같이 원가를 보상하는 선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고 가정용을 내려서 원가를 보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새로운 성장엔진에 맞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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