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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리포트)유가하락 `빛과 그림자`

김현동 기자I 2006.09.13 21:25:30
[이데일리 김현동기자] 국제 유가가 연일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77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지 두 달 만에 유가는 10달러 이상 급락했습니다. 세계 경제를 짓누르던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유가 하락이 마냥 달가운 건 아닙니다. 유가 하락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우울한 그림자 때문입니다. 국제부 김현동 기자는 유가 하락을 촉발한 세계적인 경기 둔화 가능성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나라에 유가급등 못잖은 타격을 줄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어! 또 떨어졌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국제 금융시장 동향부터 챙겨봐야 하는 기자로서는 그동안 급등했던 유가가 갑자기 뚝뚝 떨어지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초대형 테러나 허리케인 같은 재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석유를 대체할 획기적 에너지원이 개발된 상황도 아닌데 원유시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말 70달러가 무너진 국제유가(서부텍사스산 원유 기준)는 이달 들어서도 하락세를 지속, 63달러선까지 내려왔습니다. 연말쯤이면 100달러까지 갈 것 같던 원유가격이 이제 60달러도 아슬아슬해 보이는 상황입니다.

시장 전문가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유가 100달러 시대를 대비하라’고 하던 전문가들은 ‘5년 랠리’가 끝났다고 말을 바꾸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몇 개월 사이에 상황이 이렇게 급변한 것일까요. 드러난 사건들만 보면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분쟁이 해결됐고, 이란 핵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대결에서 협상으로 국면이 전환됐습니다. 지난해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도 올해는 잠잠합니다.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던 투기 세력들이 원유시장에서 빠져나갔다는 말도 들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물가 상승 압력이 줄어들어 소비심리가 살아나기 마련입니다.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인플레이션이나 금리인상 부담이 줄어들면서 증시에도 호재로 작용하죠. 그런데 지금 상황은 조금 미묘합니다.

원유값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라는 얘기들이 나옵니다. 유가가 하락한 것은 시장 외부여건이 개선된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수급 전망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유인데요. 미국의 주택경기 부진으로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될 경우 그동안 급속하게 증가했던 원유수요 자체가 줄어들 공산이 크고, 이같은 전망이 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얘깁니다.

사실, 2001년부터 국제 유가가 급등한 것은 중국과 인도로 대변되는 신흥시장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덕분입니다. ‘원자재 블랙홀’ 중국과 ‘달리는 코끼리’ 인도 때문에, 2001년 말 배럴당 17달러였던 유가는 2003년 3월에 30달러 중반으로 두 배 올랐고, 2004년 10월에는 50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지난 해에는 70달러를 돌파하면서 ‘슈퍼 스파이크(super-spike)’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01년부터 시작된 5년간의 유가 급등이 세계 경제의 성장에 기초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기름값이 오르고, 주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경제가 앞으로 나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유가상승은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그만큼 견조하다는 반증이었던 셈이죠.  

최근의 유가 하락세는 경제가 활력을 잃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시장을 짓눌러왔던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잘하면 40달러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이 반갑긴 하지만 덮어놓고 좋아할 수 만은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물론 유가 하락은 원자재 가격 하락을 낳고, 이는 기업의 비용 부담을 완화로 이어져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가 하락이 세계 경기 둔화라는 수요 감소에 따른 것이라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수출로 먹고 사는 입장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되고 세계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한다면 성장동력인 수출도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유가 하락은 그 자체로는 우리 경제에 호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가 하락의 배경이 경기 둔화라는 수요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유가 급락은 경기 사이클 둔화의 또 다른 가면일 지도 모릅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국제유가 급등에 기민하거나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원유수입 의존도가 상당히 높지만 해외유전 개발이나 수입선 다변화는 구두선에 그쳤고, 유가가 급등하면 국민과 기업들을 상대로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나 벌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급등하던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선 만큼 경제운용에 여유가 생긴 것은 맞지만, 정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주하기 보다는 유가하락을 불러온 배경까지 살펴서 비관적 시나리오와 세계적 경기둔화 가능성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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