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 단 한 번도 웃지 않아”…밀양 사건 후 피해자 본 교사의 글

강소영 기자I 2024.06.11 11:13:04

2012년 피해자 전학 후 A 교사 회고글 재조명
“아이 어머니가 부들부들 울던 모습 생생해”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최근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되며 사회적으로 파장이 인 가운데 과거 피해자가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교사의 12년 전 글이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영화 ‘한공주’ 스틸컷)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및 온라인상에서는 피해자 여중생이 2004년 사건 이후 도망치듯 서울로 전학을 간 후의 상황이 담긴 글이 관심을 받고 있다. 이 글은 2012년 여중생을 가르쳤던 A 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로, 사건 후 참담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A 교사는 “8년 전 내가 근무했던 중학교에 한 학생이 전학해 왔다”며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 전학생의 어머니가 하는 말(정확히는 울음)을 교무실에서 들었다”며 “알고 보니 그 당시 시끄러웠던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피해자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A 교사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의 어머니는 “제가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남편은 술만 마시면 우리를 때렸다. 너무 억울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큰 애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방문 밖으로 절대 나오지도 않고 작은 애만이라도 살리려고 없는 돈에 서울로 왔는데.. 돈이 없어서 방도 못 얻고 아이들은 시설에 보내고 전 여관방에서 잔다”고 오열하다시피 말했다.

어머니의 오열을 들은 A 교사는 “그 아이를 가르치며 한없는 동정을 느꼈고 평소 무서운 선생이었지만 그 아이에게만은 무척 부드럽게 대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단 한 번도 아이가 웃는 걸 본 적이 없었다”고 떠올렸다.

A 교사는 “어머니의 오열을 듣고 아이를 보니 너무 안쓰러웠다. 먹고 살아야 하니 치욕스럽게 가해자들과 합의 봐야 했을 것이다”라며 “가해자들이 말한 것과 달리 이 아이가 남자애들을 유혹했을 리가 없다. 한 학기 동안 가르쳤고 대화해봤기 때문에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 여자아이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누가 이 아이의 인생을 보상해 줄 것인가”라며 “내가 가르쳤던 어두운 표정의 작은 아이, 그 아이 엄마가 꾀죄죄한 몰골로 부들부들 떨며 울던 그날의 모습이 생각난다”고 분노를 나타냈다.

글 말미 그는 “미성년자 성폭행은 절대 용서해서도 가볍게 처벌해서도 안 된다. 내가 이렇게 화가 나는데 당사자는 어땠을까”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밀양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출간한 장편소설 ‘41’ (사진=네오픽션)
A 교사가 글을 남긴 해에는 밀양 사건을 다룬 이재익 작가의 소설 ‘41’이 출간되면서 세간이 떠들썩했던 시기였다. ‘41’은 밀양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41명의 남학생들이 한 여학생을 무참히 짓밟은 내용이 담겼다.

이 작가는 책 발간 후 “놀랍게도 가해자들 중 몇몇은 이런 식의 범죄가 두 번째였다”며 “한 번의 실수 또는 한 번의 충동을 못 이겨 저지른 범죄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이전에 비슷한 식의 성폭행을 하고 솜방망이 처벌로 훈계를 받은 후에 또 두 번째 범행을 저질렀단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정도면 분명히 법적으로 중형을 받아야 마땅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다”고 출간한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44명의 가해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2005년 울산지검은 성폭행에 직접 가담한 10명을 기소하고, 나머지 20명에게는 보호 처분을 내려 소년부로 송치했다. 이후 기소된 10명도 소년부로 넘겨졌다. 13명의 가해자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났다. 그나마 소년부로 옮겨진 이들도 전과가 남지 않았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2차 가해 등으로 피해자가 도망치듯 밀양을 떠나야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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