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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군함도는 세계 문화 유산 등재됐는데 위안부기록물은?

정다슬 기자I 2021.08.26 11:00:00

각국 역사전쟁터 된 유네스코
어떤 역사가 받아들여지느냐의 문제로 갈등 증폭
'유산외교는 양날의 검'…양국 역사공감 확대해야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된다는 것은 인류가 함께 보전해야 할만한 보편적 가치를 공히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유네스코 유산 등재를 둘러싼 각국의 치열한 경쟁은 이 역시 문화를 통한 국제사회의 협력이라는 목표 실현이 요원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오히려 ‘역사는 이긴 자들에 의해 기록된다’라는 말이 보여주듯 유네스코 유산 등재 또한 각국의 치열한 유산외교의 산물에 다름없다.

군함도는 세계 문화 유산 등재되는데, 위안부기록물은 왜 안될까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2022년 12월 1일 日이행보고서 놓고 3차전 예고

일본의 메이지 근대산업시설 23개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역시 마찬가지다. 이 중에는 군함도 등 일제강점기 한국이 강제 동원됐던 7개 시설을 포함돼 있다. 2014년 일본정부가 메이지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자, 우리 정부는 메이지 근대산업시설 중 일부 시설에서 자행됐던 비인도적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무시한 채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한 것은 세계유산의 기본정신에 어긋난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국의 반발에도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는 메이지 근대산업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유산 등재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21개 세계유산위 위원국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다만 일본 정부 대표단의 발언록과 주석(註釋, footnote)이라는 2단계를 거쳐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이 반영되고 일본 정부는 이를 충실히 해석전략에 반영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한국 정부가 메이지 근대산업유산 등재를 반대하지 않는 대신, 일본은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피해자에 대한 추모를 할 것을 약속한 셈이다. 당시 이는 양국간 극한 대립을 피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자는 긍정적 합의로도 해석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의 행보는 이같은 화해의 정신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약속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근대산업시설에서도 수천km 떨어진 곳에 사실을 2020년 3월 설립됐다. 게다가 전시된 내용에는 일본이 징용령을 내렸다는 사실은 인정하나 군함도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내용의 증언이 전시되면서 한일 간 갈등이 증폭됐다.

2021년 7월 2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는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다수의 한국인 등의 강제 노역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는 조치 등이 부족한 바 이에 대한 수정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현재 세계유산위 위원국에는 한국과 일본이 없다. 당사국이 없는 결의안 채택 배경에는 물밑에서 치열한 외교전이 있었을 것이란 사실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결의안 채택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2015년 약속한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행보고서 제출 마감시한인 2022년 12월 1일까지 이러한 일본의 입장과 우리 정부, 더 나아가 세계유산위 사이의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 정부는 “도쿄 정보센터 개선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 이행 현황을 주시하면서 일본 측에 이번 위원회 결정을 조속히,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위안부 기록물 등재 더 요원해졌나

한일이 유네스코 유산을 둘러싸고 맞부닥치는 이슈는 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다. 각국 중앙정부가 등재 신청을 하는 세계유산(World Heritage)과 달리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은 개인, 지방정부, 시민단체 등 비정부기구(NGO)가 신청하는 것이다. 이후 등재소위원회의 예비심사를 거쳐 격년으로 개최되는 14명의 문서관리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자문위원회(IAC) 총회에서 심사를 진행해 IAC 권고에 따라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등재를 결정한다.

2016년 한국, 중국 등 8개국 시민단체와 영국 런던 임페리얼 전쟁박물관이 위안부기록물 2744건을 바로 세계기록유산으로 신청했고 2017년 2월 유네스코 등재소위는 위안부 기록물 2744건을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로 평가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IAC는 이에 대해 ‘대화를 위한 연기’(postponement pending dialogue)를 결정했다. ‘위안부의 진실 국민행동’, ‘일본재생연구회’, ‘나데시코액션’, ‘언론과 방송정책연구회’ 등 일본의 시민단체 4곳이 상반된 내용의 위안부 기록물을 등재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재 유네스코 사무국은 대화를 위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를 임명한 후 NGO 간 대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별개로 세계기록유산은 심사제도에 대한 개선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역시 위안부 기록물 등재를 막는 요인이다.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유산과 달리 정부가 기록유산 등 등재 과정에 직접 관여하는 과정이 없고 심사과정이 비공개여서 개별국가가 원치 않은 기록이 등재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정부가 이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이다. 그러나 2015년 중국이 신청한 ‘난징대학살의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자 일본은 관련 자료의 신빙성과 사실에 대한 의혹을 제기됨에도 비공개 심사로 등재가 결정됐다며 반발했다.

나아가 일본은 2015년 유네스코 일본 분담금의 일시 남부정지 및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사업의 심사제도 개혁을 주도했다. 심사제도 개선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기록유산의 등재가 잠정적으로 중단돼 최근까지 기록유산 등재 심사가 중단된 상태다.

다만 지난 4일 세계기록유산 제도개혁안이 유네스코 집행위에서 승인되면서 심사가 다시금 본격화될 예정이다. 새로운 제도는 기록유산에 대한 신청자격을 각국 정부로 제한하고 등재를 신청한 유산에 90일 이내 각 국가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의제기에 대해 당사국 간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기록유산으로 등재할 수 없게 했다. 위안부기록물 등재의 벽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우리정부는 2016년에 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이번에 바뀐 절차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2017년 10월 열린 유네스코 제202차 집행이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포함된 신청물들은 기존 규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한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위안부 기록물’도 새 제도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일 역사인식 괴리…“공감영역 확대가 근본 해결책”

이처럼 유네스코 유산은 비정치적인 아름다운 화합의 유산이 아니다. 역사에 대한 어떠한 시각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역사서를 쓰는 치열한 외교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명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20년~2021년 유네스코 정규예산에서 일본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예산을 분담하고 있다”며 “한국 국가의 외교역량을 단순히 예산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본의 외교예산이 한국의 3배인 점을 고려할 때 우리의 외교역량 강화는 물론 일본과의 차별화된 공공외교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한일 양국의 역사에 대한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일 간 갈등적 역사 사안에 대한 학문적 또는 시민적 차원의 공동학술위원회를 구성해, 사료를 공유하고 양국간 공감 영역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박 조사관은 “유네스코 유산외교는 양날의 검과 같다”며 “국가적 시각에서 자국의 관점을 확산시키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와의 화해 가능성을 잠식시킬 수 있다”며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대응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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