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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 리포트)`빼빼로데이` 유감

피용익 기자I 2005.11.11 17:18:51
[이데일리 피용익기자] 11월 11일 오늘은 소위 말하는 `빼빼로데이`입니다. 11월 11일이 한 제과업체의 제품을 늘어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생겨난 이 날은 청소년을 포함해 20대,30대 젊은이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기념일로 자리잡았습니다. 데이마케팅의 효과 때문인지 상술로 가득찬 새로운 `데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데요. 산업부 피용익기자는 이같은 풍조에 할말이 많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탄 버스에는 고등학생 20여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손에 비닐봉지 하나씩을 들고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 옆 편의점에서 구입한 `빼빼로`였습니다.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직장동료로 보이는 두 여인의 대화 역시 `빼빼로`로 시작하더군요.

`빼빼로데이`는 90년대 중반 부산 및 경남지역 여중생들이 서로 날씬해지기를 기원하면서 `1`이 네번 겹치는 11월11일에 가늘고 길쭉한 롯데제와의 `빼빼로`를 주고받던 전통(?)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이를 롯데제과가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면서 오늘날 전국민이 기억하는 기념일이 된 것이지요.

롯데제과가 `빼빼로데이`로 인해 누리는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이 날 판매할 제품을 확보하기 위한 유통업체들의 주문이 폭주하면서 지난 두달간 매출은 연간 판매량의 절반인 200억원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다른 업체의 `빼빼로` 모양 과자 매출까지 합한다면 `빼빼로데이` 시장 규모는 400억원 가량이 된다고 하더군요.

마케팅의 관점에서 본다면 빼빼로데이는 대박상품입니다. 11월 11일을 빼빼로데이로 연결시킨 아이디어를 낸 직원은 두둑한 포상금을 받을 법 합니다.

이런 후광효과 때문일까요? `빼빼로데이`가 성공한 이후 유통업계에선 데이마케팅이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불경기로 인해 장사가 안 돼는 상황에서 `○○데이` 하나만 잘 뜨면 대박이 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별의별 희한한 `데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알려진 `○○데이` 수는 50여개. 1주일에 한 번 꼴로 기념일이 있는 셈입니다. 밸런타인데이(2월14일)과 화이트데이(3월14일) 등 매월 14일을 기념하는 날들 외에도 2%데이(2월22일), 삼겹살데이(3월3일), 고기데이(6월6일), 체리데이(7월2일), 쌀데이(8월18일), 구구데이(9월9일), 고래밥데이(12월12일)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 제품 판촉을 위한 기념일들이지요.

지난해부터는 `브래지어데이`라는 다소 낯뜨거운 기념일도 등장했습니다. 브래지어 끈 모양의 `11`과 가슴 모양의 `8`을 본 따 11월18일을 브래지어데이로 만든 것이랍니다. 물론 속옷업체의 작품이지요. 이 기념일은 남자가 여자친구 또는 아내에게 브래지어를 선물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자사의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 각종 `데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기념일을 줄줄이 꿰고 있으면서 정작 우리나라의 고유명절이나 국정기념일은 생소하게 생각하는 현 세태는 과도한 데이마케팅의 부작용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빼빼로데이`인 오늘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생소한 날로 들리겠지만 지난 96년 정부가 제정한 기념일이지요. 그러니 오늘 저녁식사 시간만이라도 우리의 주식(主食)을 생산하기 위해 1년 내내 땀흘린 농민들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하루 빼빼로 많이 드신 분들은 입맛이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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