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한상복기자] 금융권의 가계대출 부실화와 연체율 급증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신용경색이 내년 1분기에 중대한 고비를 맞을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의 유동성 축소 정책이 시장을 파고 들면 가계의 이자 및 부채상환 부담이 높아져 연체율이 조만간 고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신용 위험이 저소득층은 물론, 중상위층까지 위협할만한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분석됐다.
증시 전문가들은 최근 급증한 가계대출이 부동산 시장에 상당 부분 유입된 만큼, 신용경색이 가시적으로 나타난다면 자산가격 하락과 부실채권을 유발하는 동시에 소비조정으로 이어지면서 경기 침체를 몰고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설령 신용대란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크게 늘어난 가계부채 증가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그간 내수 중심으로 버텨온 우리 경제 체질을 크게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를 반영하듯 7일 주식시장에서는 은행주를 중심으로 기관의 로스컷 물량이 대거 쏟아지면서 전체 지수를 끌어내렸다. 물론 은행주 약세에는 남미의 디폴트 가능성 등 외부 악재가 섞였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외부악재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최근의 시장 움직임이 석연치 않다는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현재 신용대란 논란이 금융주 등에 제한적인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올 연말이나 내년초 쯤이면 신용대란 여부가 판가름 나 본격적으로 증시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하며, 부동산 가격 하락속도와 정책대응의 방향이 증시의 파장을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유선 메리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통해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난 원인은 부동산 구입 때문인데, 부채 상환 부담이 주로 저소득층과 중상위 소득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배현기, 이철호 동원증권 책임연구원도 7일 보고서에서 "기업 분석틀인 이자보상배율을 가계에 적용할 경우 지난 상반기중 1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소득 가운데 소비를 하고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이들은 "개인 부분 가운데 이자를 받은 측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쪽이 더 많다"면서 "이자보상배율이 1에 미달하는 계층이 다수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중산층 이하 대출, 위험수위 육박
고유선 이코노미스트는 "2분기를 기준으로 월수입 115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의 경우 부채상환 부담률이 30%에 육박해 크게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월수입 395만원~495만원인 중산층의 부채상환 부담률도 25%를 넘은 것으로 나타나 신용경색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상환 부담률은 부채상환액이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
가계가 이처럼 많은 빚을 진 것은 은행 돈을 대출받아 부동산을 구입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저소득층은 살 집을 장만하기 위해 은행 돈을 빌린 반면, 중상위층의 경우 부동산 투자 목적으로 빚을 얻어 썼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배현기, 이철호 책임연구원도 "지난 2분기 자금동향을 보면 개인들이 은행 대출을 얻어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점이 돋보인다"면서 "신용카드 연체율 상승이 가계부실에 대한 하나의 신호"라며 "문제는 항상 평균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한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가계 재정 상황의 개선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분석한 결과, 저소득층의 가계 수지가 크게 악화될 것으로 나타나, 이들 소득 계층의 부실화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의 유동성 흡수 조치에 따라 돌려막기를 통한 부채상환이 어려워지면서 카드사 등의 연체자산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소득층의 경우 저금리 및 상환기간이 긴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높고 신용카드 대출비중이 낮으나, 저소득층에서는 금리수준이 높고 단기 상환해야 하는 신용 및 카드론 수요가 많아 부채상환 부담과 단기 유동성이 지표상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게 고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이다.
◇부실 우려는 크지 않지만...
배현기, 이철호 책임연구원은 "은행 업종에 대한 투자를 검토한다면 시가총액 비중보다 높게 가져가지 않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제시했다. 최소한, 취약 계층의 연체율 둔화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계의 적정 부채비율이 얼마인지 정답은 없으나 주택담보비율을 60% 이하로 유도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견주어볼 때, 향후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 한 부실의 우려는 크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은 가계 대출의 50%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고유선 이코노미스트는 "전반적인 신용대란의 가능성은 아직 낮지만 가계신용 문제가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중에 고비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의 유동성 축소 조치가 점차 시중금리 상승 혹은 정책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이자 부담 및 부채상환 부담이 높아져 연체율이 조만간 고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다.
고 이코노미스트는 "신용대란 발생 가능성은 부동산 가격 급락 여부와 정부의 금융정책 강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단 지금으로선 부동산 가격 조정이 가시화되고 있지 않으나, 4분기부터는 증가세가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급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 이유로는 대체 투자수단 부재와 여전한 부동산 수요, 수도권 일부지역에만 집중된 가격상승 등을 꼽았다.
◇내수 위축이 더 큰 문제
고유선 이코노미스트는 "신용대란 현실화 여부를 떠나 실질적인 가계부채 증가와 부실화 가능성 만으로도 실물경제에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고 이코노미스트는 "높은 수준의 부채로 인해 추가 차입이 어려워지므로 소비의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기 어려우며, 상환부담이 늘수록 가계는 소비자금 여력을 줄여 마침내 소비심리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가 시중유동성 축소 의지를 밝히자 가계는 금리 인상을 예상하며 지출을 줄이고 부채 상환에 나서게 됐다"면서 "외환위기 과정에서 파산의 부작용을 학습한 만큼 과거와는 달리 경기 선행적이며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3분기 현재 각 가구는 월평균 23만8000원의 이자를 지불하고 있는데 이같은 부담은 조만간 소비 둔화 요인으로 작용해 4분기 소비증가율을 4%대로 낮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배현기, 이철호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가계는 소비수준을 유지하거나 줄이는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이같은 조정은 미리 이루어지는 조정에 비해 고통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존의 소비 증가세를 유지하려면 자산을 처분하는 수 밖에 없으며, 만일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있고 가계가 심리적인 공포에 휩싸여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된다면 부동산 가격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고 우려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이렇게 되면 주택담보 비율이 상승하고, 주택담보 대출은 부실채권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들은 또 "이자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소비를 조정할 경우 소비둔화와 성장률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유선 이코노미스트는 "콜금리 인상이 본원통화 축소보다 주택가격 및 총유동성에 미치는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만, 소비에 미치는 타격 역시 커질 수 있다는 점이 딜레마"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