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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판통합전산망, 출판계 불공정 관행 종식시킬까

김은비 기자I 2021.06.28 11:00:00

출판사, 책 판매량 입증할 시스템 없어
출판통합전산망 공식문서 형식으로 판매량 제공
"작가와 출판사 최소한 신뢰 회복할 수 있어"
"출판계 참여 이끌기 위한 인센티브 등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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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장강명 작가의 인세 미지급 논란에 이어 최근 베스트셀러 ‘90년생이 온다’의 임홍택 작가도 인세 누락 논란이 불거지는 등 출판계의 불공정 관행이 잇따라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해결책으로 오는 9월 출범하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통합전산망)이 제시되고 있다. 통합전산망은 도서의 생산·유통·판매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집·관리해 도서의 유통·판매 현황을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작가와 출판사 간 투명한 출판유통 체계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 작가는 올해 출판사로부터 2019~2020년 종이책 판매 부수 및 미정산 금액 정리 자료를 이메일로 받았다. 출판사가 서점 등 유통사와 계약을 맺는 출판계 시스템상 저자가 직접 판매량을 확인할 수 없고, 출판사를 거쳐 확인을 해야 한다. 임 작가가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 판매부수는 인쇄부수보다 10만 부가 적었다. 출판사는 재고라고 설명했지만, 임 작가가 재차 확인을 요청하자 뒤늦게 미정산 부수 6만 3945부가 확인됐다며 임 작가에게 9100만원 가량을 추가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서 상에 재고를 뺀다는 규정이 없어 결국 출판사는 작가에게 재고 포함 10만부에 대한 인세 1억 5천여 만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출판사가 판매부수와 미정산 부수를 통보만 했을 뿐 이들 수치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책 판매량 입증할 시스템 없어…“통합전산망서 자료로 제공”

인세 누락 문제는 임 작가뿐 아니라 출판계가 고질적으로 겪어온 문제다. 임 작가의 사례처럼 책 판매량을 작가가 투명하게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현 한국작가회의 저작권위원장은 “지금까진 출판사를 신뢰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며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이 출범하면 신빙성 있는 자료로 책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어 출판사에 대한 신뢰가 보다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출판전산망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과 함께 지난 2018년부터 약 6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구축한 시스템이다. 현재까지 교보문고, 예스24 등 대형 서점에서 판매 데이터를 제공하겠다고 한 상황이고, 지역 서점들에도 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고 있는 중이다.

출판사는 시스템에서 매일 업데이트되는 연계 서점의 책 판매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시스템이 도입돼도 당분간은 작가가 책 직접 판매량을 확인할 순 없다. 모든 출판사에 ‘정보공개 동의’를 받기도 해야 하고, 실제 저자가 맞는지 인증 데이터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진우 진흥원 팀장은 “출판계와 관련 문제를 검토 중이지만, 전국에 출판사만 수만개에 작가들도 워낙 많아 의견을 모으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신 진흥원은 출판사에 공식문서 형식으로 책 판매량을 제공할 예정이다. 최소한 출판사가 저자에게 판매 부수를 통보할 때 공식문서를 제공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박성경 한국출판인회의 유통위원장은 “결국에는 작가와 출판사간 신뢰의 문제기 때문에 전산망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불신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이데일리 DB)


“출판계 참여, 불이익보단 인센티브로 이끌어야”

이처럼 당장 출판사와 작가 사이의 정보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출판통합전산망 이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지만, 출판계는 출판통합전산망의 관리·운영 주체를 두고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 과거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의 경험으로 정부 추진 운영방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게 이유다. 출협 관계자는 “문체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세종도서가 과거 블랙리스트에 악용된 것처럼 출판전산망도 정부가 주도해서 운영할 경우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출판전산망이 모델로 삼고 있는 유럽, 일본도 정부가 아니라 민간 사업자가 주도해 전산망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전산망 정보 공개 원칙부터 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장은수 출판 평론가는 “전산망에서 어떤 정보를 수집해서 누구에게 어디까지 공개할지 등 구체적 규칙을 출판 및 유통업계와 꼼꼼히 설계해 서로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며 “또 전산망에 참여 안한 출판사에게 불이익을 주기보단 참여 출판사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역시 “출판계가 출판통합전산망 구축 때 요구한 책 홍보 및 신간 출간을 위한 출판 통계 정보 등의 기능은 쏙 빠져있다”며 “문체부와 진흥원은 지금이라도 다시 관련 업계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커뮤니케이션은 지난해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사진= 김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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