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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화즈빙과 국가 인공지능 경쟁력

e뉴스팀 기자I 2021.09.03 13:29:43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금년 6월 1일 중국 북경의 칭화대학교 컴퓨터학과에 화즈빙이란 여학생이 입학했다. 문학과 예술에 흥미가 많고 시와 그림에 소질이 있는 이 여학생이 중국의 소셜 미디어인 웨이보에 자기소개 동영상을 올리고 대학에 입학한 소감을 밝히는 글을 올리자 9시간 만에 2000명의 팔로워가 생겼다. 화즈빙의 어떤 점이 특별해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팔로워가 모였을까. 사실 화즈빙은 매우 특별한 학생이다. 화즈빙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상 학생인 것이다.

작년 말 세상을 놀라게 한 미국 오픈AI사의 GPT-3보다 열배 더 많은 변수를 학습시킨 세계 최고 수준의 언어 처리 인공지능 우다오 2.0을 기반으로 태어난 화즈빙은 아직은 6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딥 러닝으로 인지 능력을 높여 내년에는 12세, 대학을 졸업하는 4년 뒤에는 22세의 지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소통하는 인공지능 개발을 목표로 칭화대학교, 즈푸AI, 그리고 사오빙이 공동 개발하여 개발자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와 화즈빙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중국의 인공지능 발전 속도가 놀랍다. GPT-3가 발표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열 배의 학습 능력을 가진 우다오 2.0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작년에는 처음으로 중국의 인공지능 연구 결과의 인용 횟수가 미국을 앞질렀다. 중국이 개발한 숏폼 모바일 비디오 플랫폼 틱톡은 유튜브나 페이스북도 따라잡지 못하는 뛰어난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전 세계 인공지능 산업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4.6%로 38.3%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의 격차 역시 좁혀지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이 어떻게 최첨단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을 위협하게 됐을까. 중국은 2001년부터 초·중·고 교과 과정에 코딩 교육을 의무화하여 초등학교는 68시간 이상, 중학교도 68시간 이상, 고등학교는 70~140시간의 코딩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키워진 인력을 국가 중·장기 인재 발전 계획, 세부 인재 양성 정책 등 전략적 인재 양성 정책을 통해 인공지능 분야의 인재로 육성해왔다

중국은 또한 2017년 발표한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인공지능의 전 분야에 걸쳐 세계 선두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매년 인공지능 분야에 10조 원에 가까운 투자를 하고 있다. 이는 약 6조 원을 투자하고 있는 미국을 두 배 가까이 초과하는 규모이다.

중국의 인공지능 굴기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인공지능 역량은 모두 미국에서 가져간 것이다. 유학생을 보내 교육해 줬더니 이제는 안방을 차지하려 달려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의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로 시작된 중국 유학생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 조치는 5월에 시효가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19년 12월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하고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인재 양성과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국가전략 발표 이후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산업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네이버나 카카오조차도 인공지능 전문 인력은 고사하고 데이터를 다룰 사람조차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53%가 인력 부족으로 인공지능 도입을 포기할 지경이라고 한다. 최근 자체 교육 프로그램으로 석사급 인공지능 인재 1000명을 키우겠다는 LG의 발표 역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필요한 인재를 공급받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중학교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하여 현재 초등학교 5~6학년 17시간, 중학교 34시간의 소프트웨어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중국보다 17년 늦게 시작한 의무 교육인데 교육시간이 중국의 절반에 불과해서야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중국이 실행하고 있는 전략적 인공지능 인재 양성은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인재 양성을 통해 중화학공업 기반의 국가 발전을 이룬 사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경제 발전의 성과에 취해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에 중국이 우리가 개발한 인재 육성 프로그램으로 인공지능 인재를 키워내고 있는 상황이다.

인공지능은 특정 산업에만 필요한 역량이 아니다. 정보 통신이나 의료, 서비스 산업뿐 아니라 농수산업, 제조업, 심지어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핵심 역량이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지난 성공 체험을 되살려 전략적으로 인공지능 인재 양성에 국력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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