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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명령 반하는 사측 업무지시 거부에 해고…대법 "부당, 다시 재판"

박정수 기자I 2023.07.11 12:00:00

상급자 업무지시 거부 이유로 경비실 등 전보발령
"부당전보에 해당"…중노위, 원직 복직 구제명령
구제명령 반하는 사측 업무지시 거부에 근로자 해고
1·2심 원고 패→대법, 파기·환송…"근로자 사정 등 살폈어야"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노동위원회 구제명령의 적법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제명령에 반하는 사용자 업무지시를 거부한 근로자 행위에 대한 징계는 정당성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특히 구제명령이 취소되는 경우라도 구제명령에 대한 근로자의 신뢰 정도와 보호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징계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석유화학제품 제조·판매사 전 직원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2011년 5월 회사에 입사해 생산팀에서 근무하다가 2013년 4월 연구개발팀으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2014년 9월 A씨는 상급자와 말다툼을 하던 도중 그의 멱살을 잡고, 유리컵을 던져 상해를 가했다.

사측은 A씨의 비위행위 등을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처분을 내렸고 A씨를 경비실로 전보발령했다.

A씨는 2015년 2월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부산지방노동위는 징계처분은 정당하나 전보발령은 부당하다고 봤다. 이에 사측은 2015년 5월 A씨를 다시 연구개발팀으로 복직시켰고, 같은 해 10월 연구개발팀의 명칭은 품질관리팀으로 변경됐다.

사측은 2015년 6월 A씨에게 3층에서 근무할 것을 지시했으나 A씨는 3층 자리에 컴퓨터 등 비품이 없다는 이유로 1층에서 대기하다 2015년 8월에서야 3층으로 이동했다. A씨는 또 주간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풀질관리팀장 지시에 응하지 않다가 회사 규정 등을 그대로 복사해 제출했다.

사측은 2015년 10월 A씨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리고 2016년 1월 시스템관리팀으로 A씨를 전보발령냈다. A씨는 재차 부산지방노동위에 구제를 신청했으나 2016년 3월 부산지방노동위는 징계처분과 전보발령 모두 정당하다며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A씨는 재심을 다시 신청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2016년 6월 전보발령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A씨를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내용의 구제명령을 내렸다.

사측은 2016년 7월 A씨를 복직시키는 대신 생산1팀으로 전보발령했으나 A씨는 거부했고 사측은 A씨에게 시스템관리팀에서 계속 근무하도록 했다.

이후 사측은 중노위 구제명령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2017년 3월 전보발령이 정당하다며 중노위 판정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A씨도 징계가 부당하다며 소를 제기했고 1심과 2심은 징계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 2017년 6월 확정됐다.

그러자 사측은 △시스템관리팀 팀장 업무지시 거부(2016년 7~9월) △교육 참석 거부(2017년 3월) △시스템관리팀 과장 업무지시 거부(2017년 5~6월) 등을 이유로 2017년 7월 A씨를 해고했다.

징계사유 대부분 서울행법 1심 판결(2017년 3월)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이에 A씨는 부당해고라며 구제신청을 했으나 지노위와 중노위는 모두 기각했다. 결국 A씨는 재심판정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1심과 2심은 A씨의 업무지시 거부 행위를 비위행위로 한 이 사건 해고 처분은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판결했다. 특히 “사측이 구제명령을 따르지 아니한 채 한 업무지시가 부당하거나 원고가 업무지시를 거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에는 구제명령과 징계사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봤다.

우선 대법은 “근로기준법이 사용자에게 구제명령에 대한 즉각적인 준수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해고나 부당전보 등이 있으면 근로자는 생계의 곤란이나 생활상의 큰 불이익을 겪게 돼 신속한 구제가 필요한 반면, 사용자는 분쟁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실질적인 불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사용자가 구제명령에 반하는 업무지시를 하고 근로자가 그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구제명령이 당연무효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당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 구제명령 취소 판결 등이 확정된 경우 구제명령이 취소 전까지 유효하다고 믿은 근로자의 신뢰 등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징계의 적법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업무지시 후 구제명령을 다투는 재심이나 행정소송에서 구제명령이 위법하다는 이유에서 이를 취소하는 판정이나 판결이 확정된 경우라면 그러한 징계가 정당한지는 앞서 본 구제명령 제도의 입법취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구체적으로 △업무지시의 내용과 경위, △그 거부 행위의 동기와 태양, △구제명령 또는 구제명령을 내용으로 하는 재심판정의 이유, △구제명령에 대한 쟁송경과와 구제명령이 취소된 이유, △구제명령에 대한 근로자의 신뢰의 정도와 보호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구제명령 취소 이전의 징계처분을 전부 정당하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대법원은 “1심 판결이 선고되기 전까지는 이 사건 구제명령을 신뢰해 업무지시를 거부한 원고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없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근로자가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에 반하여 한 사용자의 업무지시’를 거부한 행위에 대한 징계의 정당성 판단에 관한 첫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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