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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1조달러]`오징어`로 시작한 韓무역, 반세기만에 `1만배`

안재만 기자I 2011.12.05 17:01:05

1962년 공업화 이후 수출 `탄력`
노동집약 상품서 일류로 수출품목 변화

[이데일리 안재만 기자] 1960년대 한국은 전쟁의 상흔만 남아 있을 뿐, 아무런 기반 시설이 없었다. 당시 한국의 수출이라곤 쌀과 오징어를 비롯한 어류, 비철광석 수출밖에 없었다.

하지만 1962년 공업화를 기치로 내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며 조금씩 무역강국 한국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저렴한 임금과 유휴 인력을 활용, 노동집약적인 의류와 직물, 신발 등의 생산과 수출이 시작됐다. 50년도 안돼 1만배 늘어난 한국의 무역. 그 발자취를 되짚어 보자.

◇ 1962년 공업화 시작..고속 성장 무역협회에 따르면 1962년 기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은 쌀과 어류였다. 쌀, 어류의 수출 비중은 각각 15.8%, 14.3%였다. 당시 수출액은 5600만달러였다.

그러다 공업화가 시작되자마자 의류, 합판, 잡제품 등이 부상했다. 1964년 무역 1억달러를 넘은 뒤 4년만인 1968년 4억5500만달러를 수출하는데 성공했다. 의류는 단일 품목으로는 처음 1억달러를 넘은 1억1200만달러 수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6년 뒤인 1974년, 수출은 딱 10배 늘었다. 1974년 의류는 9억4700만달러 수출을 기록했고, 처음으로 전기기기가 주요 수출품(2억8600만달러)으로 부상했다. 철강판과 인조 섬유직물, 신발도 수출 품목에 등장했다.

무역 100억달러까지 가는 길은 미국과 일본, 서독 등 선진국의 힘이 컸다. 특히 미국과 일본에 대한 수출 비중(1962년~1974년)은 각각 38.5%, 30.4%에 달했다.

이 기간의 또 다른 특징은 해외교포 등 인전 교류와 수출이 동반하는 구조였다는 점. 일본과 미국의 해외교포, 서독으로의 광부·간호사 파견, 1960년대 베트남 파병은 해당국에 필요물자를 수출하는 계기가 됐다.

◇ 섬유의 퇴보..자본집약적 수출구조로 바뀌어 한국 무역이 1974년 100억달러에서 1980년대말 1000억달러로 수직상승하기까지의 일등 공신은 의류와 작물, 신발 등이었다. 이 시기는 섬유산업의 최절정기로, 사상 첫 무역흑자를 기록(1986년 31억달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섬유는 인건비 상승과 함께 뒤로 밀려났다. 섬유의 자리는 서서히 선박과 영상기기, 자동차, 반도체 등 중화학 장치산업이 차지했다. 한국의 수출 구조가 노동집약적에서 자본집약적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조금씩 신흥국으로의 수출도 발생했다. 중동의 사우디 아라비아, 인도, 호주 등이 그 대상이었다. 특히 중동은 건설 붐이 일며 이들 지역에 대한 수출이 한시적으로 급증했다.

1990년대 이후엔 수출산업이 반도체와 컴퓨터, 자동차, 선박, 석유제품 위주로 재편됐다.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 손을 잡으며 수출 대상 다변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도 특징 중 하나다.

◇ 2000년대 들어 품질 경쟁력으로 `우뚝` 2001년 이후 한국 무역은 다시 한단계 성장했다. 반도체, 선박, 석유제품, 휴대폰 등의 수출 제품은 1990년대와 큰 차이가 없지만, 가격보다 품질 경쟁력 덕에 세계시장을 석권했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주력 수출품은 1990년대와 같지만 제품의 질이 좋아진 것이 특징"이라며 "1990년대의 기술 개발, 시설 투자가 결실을 이룬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중국이 최대 수출국으로 떠올랐고 신흥경제국 비중이 높아졌다. 특히 중국으로의 무역 비중은 1887억달러(2001년~2005년)로 전체의 18.1%를 차지, 미국을 따돌리고 1위 무역국이 됐다. 일본은 한자리수인 9.1%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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