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신용카드를 만든 나라, 그러나 할부가 없는 미국

이현정 기자I 2012.11.13 14:00:00

"20~40% 비싼 리볼빙 이자 불만하기 보다 신용 쌓기 우선"

[라스베이거스·LA=이데일리 이현정 기자] 미국 최대 세일 행사 기간인 추수감사절 ‘블랙프라이데이’를 일주일 앞둔 지난 7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프리미엄 아울렛은 예상외로 한산했다. 매장마다 연말 파격 할인행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무리 지어 온 중국인 관광객들만 커다란 쇼핑백을 양어깨에 걸친 채 신이 난 듯 매장을 기웃거렸다.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준명품 매장에서 한국의 절반도 안 하는 가격에 깜짝 놀라 가족·친지 선물용 등 몇 가지 물품을 골랐다. 아무리 가격이 싸다지만 한꺼번에 내기가 부담스러워 3개월 할부로 결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미국인 점원은 내게 일시불인지 할부인지 묻지도 않고 신용카드를 긁어버리는 게 아닌가. 적지 않게 당황한 기자는 다른 고객들의 결제 모습을 자세히 지켜봤지만, 점원은 단 한 명의 고객에게도 결제 방법을 묻지 않았다.

이틀 뒤 로스앤젤레스(LA) 근교 한 쇼핑센터에서 마음에 드는 겨울 코트를 골랐다. 점원에서 신용카드를 내밀면서 ‘3개월 할부로 결제해 달라’고 했지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결국 또다시 옷값을 한꺼번에 내고 말았다.

8일(현지시간) 미국 LA의 한 대형 마트에서 한 손님이 물건을 구매한 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모두 돈이 많아서 할부를 안 하나?’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신용카드 할부 개념이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대신 매달 우편으로 오는 청구서(statement)를 받고 본인이 어느 정도 낼 것인지 결정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사용한 금액(Purchase)이 1500달러라도 정해진 기간 안에 반드시 내야 하는 금액인 미니멈페이먼트 (Minimum Payment) 만 결제하면 되는 구조다. 즉 최소 금액만 내고 나머지는 나눠서 갚는 우리나라의 ‘리볼빙’ 같은 개념이다.

패트릭 홍 뱅크카드서비스 사장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리볼빙을 사용하고 있으며 최소결제비율은 사용금액의 1% 내외다”며 “리볼빙 이자가 40%까지 올라가기도 하는데 미국인들은 높은 이자를 탓하기보다 ‘비싸면 이용 안 하면 된다’는 인식이 앞서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리볼빙은 이자 상한선이 없어 계속 연체를 하다 보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신용카드를 잘 사용하면 약이 되지만 잘못하면 모두 빚이 되어 돌아오는 건 마찬가지인 셈이다.

다만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신용카드 발급 자체가 매우 까다롭고 ‘신용(Credit)’에 따라 한도가 부여된다. 신용점수가 나쁘면 일상생활을 할 때 손해를 보거나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아 고객이 알아서 신용 쌓기에 노력하고 있었다.

LA에서 8년째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최현범(43) 씨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신용카드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그나마 처음 발급받은 카드 한도가 500달러에 불과했다”며 “꼬박꼬박 제날짜에 결제하고 매월 사용액을 늘리는 등 철저히 자신의 신용도를 관리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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