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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하늘에 닿을 듯 치솟은 기암절벽을 따라 한참 시선을 내리면 그제야 물이 보인다. 산신령이 서 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깊은 산세에 총총히 박힌 소나무까지 고풍스러운 풍경. 전형적인 옛 산수화 그대로다. 나뭇배 위에 서서 긴 노를 젓는 뱃사공만 봐도 ‘공식’을 비켜가지 않는다.
그런데 반전은 바로 배 위에서 벌어졌다. 무심코 들여다본 그 속에 거대한 강아지를 앞세운, 알록달록하게 차려입은 오리 한 마리가 보이니 말이다. 저 오리가 ‘꽥꽥이’인 건 작품명에서 확인했다. ‘꽥꽥이의 옥순봉 기행’(2022)이란다.
작가 정학진은 전통에 현대를 얹는 작업을 한다. 그저 요즘 사물 한 조각 올리고 마는 것도 아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질적이지 않은 조화가 핵심인 거다. 북실한 털실로 ‘제작’한 꽥꽥이는 작가가 즐겨 옮겨놓는 대상.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을 보다 ‘옥순봉도’에 매료됐고, 나는 못 가는 그곳에 애착인형 꽥꽥이라도 다녀오라고 보냈다”고 했다.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갤러리그림손서 여는 곽윤미·김수민·김숙경·김유미·김정우·노경아·양혜진·이초아·이효정·장유리·장재연·최지현·최지희 등 14인 작가 기획전 ‘전통의 재해석’에서 볼 수 있다. 비단에 석채를 올리는, 조선시대 궁중화가가 즐겨썼다는 진채법을 고수한 작업으로 꾸렸다. 비단에 진채. 65×50㎝. 갤러리그림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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