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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다시는 여기서 회의하지 마" 900조의 도시 전주의 딜레마

조해영 기자I 2021.08.27 11:16:27

2017년 전주 이전 후 처음으로 전주서 기금위
주요 회의 서울서 개최·운용역 이탈 두고 '비판'
수탁기관, '글로벌 연기금' 쫓아 전주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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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밝은 조명, 호텔 직원이 따르는 커피 대신 저마다의 자리 앞에 놓인 테이크아웃 커피, ‘여름철 적정 냉방 온도는 26~28℃’라는 문구가 무색하게 에어컨 온도는 20℃ 초반으로 맞춰져 있다.

회의 시작 30분 전, 참석자들이 도착하고 관계자들은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틈에서 처음 듣는 대화가 오간다. “뭐 타고 오셨어요?” “저는 익산역으로 왔어요.” 동시에 한쪽에서는 “올라가는 차는 18시 18분이에요”라는 말이 들린다. 그보다 앞서 어떤 이는 관계자를 향해 장난스러운 말투로 “다신 여기서 회의하지 마”라고 외치기도 했다.

“다신 여기서 회의하지마” 900조의 도시, 전주의 딜레마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전주행 4년 지났지만…핵심 회의는 여전히 서울

국민연금은 ‘어디’에 있을까. 국민연금공단 본부의 주소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다. 이곳에는 행복연금관·연금누리관·글로벌기금관 등 본부 건물 3개가 모여 있다. 당연히 기금운용역을 포함해 본부 직원은 모두 전주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서울에서 매듭을 짓는다.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국민연금 본부가 전주로 자리를 옮긴 지난 2017년 이후로도 계속 서울 시내 호텔 등에서 열렸다. 은은한 호텔 조명 아래, 회의 시작을 준비하는 위원들 사이로 검은 유니폼의 호텔 직원들이 오가는 풍경이 거의 매달 반복됐다. 지난 25일 처음으로 전주에서 열린 올해 제8차 회의를 앞두고 낯선 풍경과 낯선 말들이 오간 이유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5일 전북 전주 국민연금 행복연금관에서 2021년도 제8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복지부)
기금위에 앞서 안건을 검토하는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실평위) 역시 서울에서 열린다. 국민연금 본부로부터 의결권 결정을 위임받는 탓에 매년 3월 주주총회 시즌마다 이목이 쏠리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나 올해 논란이 됐던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실무적으로 논의한 투자정책전문위원회(투정위) 등도 모두 서울이 기반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계속됐다. 전주 이전 후 기금운용역의 퇴사가 줄을 이으며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고, 비(非)수도권 지역으로 이전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이 겪는 비효율에 국민연금도 노출됐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전주를 떠날 때 누군가는 전주로 향한다. 시장은 돈을 좇고,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 GPIF와 노르웨이 국부펀드 GPF에 이은 세계 3대 연기금이다. 기금 규모는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900조원을 넘겼고, 내년에는 1000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있는 도시 전주에 수탁기관들이 별도의 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은 그래서다.

전북 전주 국민연금 본부 인근에 위치한 하나펀드서비스 전주센터 입구 (사진=조해영 기자)
◇수탁기관, 900조 ‘쩐주’ 따라 전주에 별도사무소

하나펀드서비스는 국민연금 수탁기관 전주사무소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센터장을 포함해 18명의 직원이 전주에 상주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로부터 도보 10분 거리에 올해 초 문을 열었다. 국민연금이 국내 운용사들에게 맡긴 위탁운용 자산의 순자산가치 산출과 법규준수 업무 같은 사무관리업무를 맡고 있다.

하나펀드서비스 외에 우리은행(국내주식), 신한은행(국내채권), 하나은행(국내대체) 등이 전주에 사무소를 두고 있고, 해외수탁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은행(주식·대체)과 뉴욕멜론은행(채권)도 서울에서 200㎞ 떨어진 도시 전주에 별도의 사무소를 열었다. 다만 하나펀드서비스를 제외하면 전주사무소에서 상주하는 인원은 각 10명 미만 수준이다.

900조원 기금이 실물 형태로 전주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메신저와 화상회의로 실시간 ‘언택트’ 소통이 가능한데도 수탁기관이 전주로 내려가는 이유는 뭘까. 하나펀드서비스 관계자는 “사무관리업무는 밀착서비스가 필요하다”며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는 수시로 오가며 대면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 발전해도 직접 얼굴을 보며 말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지역에 공간을 마련하고 직원을 내려보내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기업에는 비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탁기관 전주사무소’는 실시간 밀착소통의 가능성 못지않게, 앞으로 더욱 덩치를 불려 갈 국민연금의 수탁기관이라는 ‘타이틀’을 공고히 하겠다는 목적이 깔린 결정일 수밖에 없다.

한 수탁기관 전주사무소 관계자는 “수수료 등으로 미루어볼 때 국민연금 수탁업무가 수탁기관 입장에서 소위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다른 기관의 업무를 따낼 때 ‘국민연금 수탁기관’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이 있다”고 전했다.

전주 역시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해지며 가까이에 사무소를 두고도 대면이 어려워졌다. 일부 전주사무소는 휴가철 등과 겹치며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오후 찾은 스테이트스트리트은행 전주사무소는 불이 꺼져 있었다.

국민연금 수탁기관 전주사무소(센터) 현황 (자료=국민연금)
◇최대 규모 운용역 선발·전주사무소 증원 계획도

이달 서울에서 만났던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 전주 이전을 두고 말이 많을 때, 나는 그럴 거면 차라리 ‘국민연금을 독도로 보내자’고 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 목적 중 하나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의 인적 카르텔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데 있고, 그럴 거라면 아예 독도로 보내도 되지 않겠냐는 주장이었다.

전주로 내려간 국민연금이 ‘카르텔 해소’라는 목적을 달성했는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국민연금은 운용역 이탈 등에 대한 문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운용역을 선발했다. 실무경력이 없는 인재를 선발해 국민연금에서 경력을 시작한 인재로 키우겠다는 계획도 있다. 물론 이들이 국민연금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2월 문을 연 우리은행 전주사무소는 오는 2023년까지 8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25일 기금위가 열린 행복연금관 2층에서는 경력직원 면접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처럼 누군가가 전주를 떠날 때, 누군가는 900조원의 도시 전주로 향한다. 이런 경향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국민연금의 올해 제9차 기금위는 아마도 예전처럼 서울에서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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