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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과학상식들이 지난 4월까지 조선일보 주말섹션 `Why`에 연재됐다. 4년 1개월 동안 매주 꼬박꼬박 독자를 찾은 인기칼럼이었다. 그렇게 모인 199편으로 최근 `이인식의 멋진과학`이란 책 두 권이 엮였다.
“나는 과학을 모른다.” 지난 2일 서울 역삼동 자택에서 만난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 소장(66)은 첫 마디부터 강경했다. 질문을 채 꺼내놓기도 전 이 소장의 신랄한 언변과 마주해야 했다. 이론과 도서관 논리로 명맥을 이어가는 과학계를 향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과학을 자연과학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문제라 했다. 자신은 한 번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원리를 다룬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그저 도서관에 없는 내용을 찾아냈을 뿐이라는 거다. 과학은 이론이 아니다, 해석하는 방법이며 또 보는 방법이란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소장이 칼럼을 일간지에 연재한 건 최근 4년간만이 아니다. 그전에 한겨레와 동아일보에도 각각 150편씩 연재하는 등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600편을 기고했다. 큰 고리는 물론 과학이다. 하지만 그의 칼럼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들어있다. 과학기술을 매개로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종교·문학 등을 넘나들며 마치 생활필수품 같이 과학을 던져놨다.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 기업의 회장을 언급했다. “항상 그의 눈에 돈이 보이는 것처럼 내 눈에는 글이 보인다.” 그 혜안으로 매일 신문을 읽고 새로운 과학지식이 넘치는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쉬지 않고 드나든다.
첫 칼럼을 쓴 것은 1992년.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부터다. “뭔가 아닌 것 같은 허전함이 들었다”고 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학사의 학력으로 나노기술에 관한 칼럼을 써 `월간조선` 4월호에 실었다. 그 후로 20여 년.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1호 과학칼럼니스트가 됐다.
칼럼은 이 소장에게 글 이상이다. 한마디로 `밥줄`이었다는 거다. “글을 써야 수입이 생겼다”는 그에게 칼럼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에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200회로 그치자고 말을 꺼낸 것은 그 자신이었다. 건강상의 이유 때문이다. “1주일에 이틀은 고생을 해야 했는데 더 이상은 버텨내기 버거웠다.”
석·박사학위도 없이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과학상식이 학맥과 인맥으로 똘똘 뭉친 과학계엔 좀처럼 흡수되지 않았다.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지냈다. “몇몇으로 상징되는 풍조가 사라져야 과학기술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것”이란 얘기를 덧붙이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 서운함을 덜어줄 일이 생겼다. 지난 5월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로부터 월간지 `PEN`에 나노기술 칼럼을 연재해달라는 청을 받은 것. 7월부터 2회를 냈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것은 한국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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