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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난에 힘 세진 美 노조…올해 파업만 176건

김무연 기자I 2021.10.19 10:31:05

8월 이후 40여건…전년 동기 대비 2배 증가
켈로그·존디어 파업 돌입…할리우드 가까스로 합의
스타벅스 바리스타 노조 설립 추진…노조 가입자도↑
노동자 눈높이 향상, 정치권 지원 등 복합적 결과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미국에서 노동자들의 발언권이 점차 강력해지고 있다. 업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파업을 진행하는가 하면, 노동조합 설립을 요구하는 등 자신들의 권리를 관철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인난에 허덕이는 미국 기업들로서는 사면초가에 빠지게 됐다.

켈로그 미시간 주 공장의 파업 노동자(사진=AFP)


강력해진 노조, 올해 파업만 176건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미 코넬대 노사관계대학원 집계 결과를 인용, 이달 발생한 17건을 포함해 올해 176건의 파업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 또한 지난 8월 1일 이후 40여개의 사업장에서 파업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증가한 수치다.

최근에는 농기계와 중장비를 만드는 존디어 근로자 1만명이 지난 14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전미자동차노조(UAW) 집행부는 회사와 임금 및 기타 혜택에 합의안을 내놨지만, 노조 구성원 90%가 합의안에 반대하면서 파업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시리얼 회사 켈로그의 미시간·네브래스카·펜실베이니아·테네시 공장에서도 약 1400명의 노동자들가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켈로그가 의료 보험, 퇴직 수당 및 휴가 시간 삭감을 고려하면서 파업에 들어갔단 설명이다.

할리우드의 미국 영화 촬영, 무대, 소품, 메이크업 등을 담당하는 근로자로 구성된 노조 ‘국제 극장 무대 종사자 연맹’(IATSE)은 이날 근로조건 개선안에 잠정 합의함에 따라 파업 위기를 모면했다. 노조 구성원만 6만명에 달하는 IATSE가 파업에 들어가면 사실상 영화 산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구인난에 직원 채용 광고를 매장 밖에 스타벅스(사진=AFP)


노동자, 노조 관심 늘어…가입 늘고 신설 움직임도

노조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구인난을 겪고 있는 미국 내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미 노동부의 8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서 8월 퇴직자 수는 327만 명, 퇴직률은 2.9%로 집계됐다. 퇴직자 수와 퇴직률 모두 지난 2000년 12월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더 나은 직장을 찾아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회사 입장에서도 노조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워졌단 설명이다.

노조에 힘이 실리면서 노동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비스노동자국제연합 32BJ의 롭 힐은 “올해 신규 노조 가입자는 지난해 4000명보다 2배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라면서 “임금, 의료보험 적용, 유급휴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노동자들도 노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노조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은 최근 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무산되긴 했지만, 앨라배마주에서 아마존 창고 노동자가 첫 노조 설립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 정계도 노조 설립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노조가 결성된 미국 공장에서 만든 전기차에 4500달러(약 535만원)의 세금 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AFP)


노조 영향력 증대, 노동자 눈높이 향상·정치권 지원 복합 결과

그동안 미국에선 노조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됐다. 지난해 노조에 가입한 미국 노동자의 비중은 10.8%로, 1983년(20.1%)에 비해 9.3%포인트(p)가 낮아졌다. 노조 가입률이 정점을 찍었던 1954년(34.8%)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노조 가입률이 줄어든 까닭으로는 제조업, 운송업에서 일자리 증가가 둔화된 탓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짚었다. 제조업, 운송업은 일반적으로 의료 및 기타 서비스보다 노조 가입률이 높다. 특히, 일부 제조업체는 노조 가입을 피하고자 노조 가입을 기피하는 미국 남부로 공장을 이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노조 가입률이 줄었단 설명이다.

최근 노조의 파업이 잦아지고 노조에 관심을 갖는 노동자가 늘어난 까닭은 단지 일자리를 원하는 노동자가 적기 때문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이 기록적인 실적을 달성하면서도 노동자 처우 개선에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에 노동자들이 분노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노동총연맹(AFL-CIO)의 리즈 슐러 의장은 “근로자는 더 이상 감시받고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삶에 지쳤다”라면서 “궁극적인 문제는 직장에 복귀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보수가 좋으며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친(親)노동계라는 점도 노조 활동이 활발하게 변한 원인으로 꼽힌다. 아담 리트윈 코넬대 교수는“경제적 권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도 노동자의 편”이라면서 “고용주들은 굴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곧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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