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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길냥이 집'으로 쓰인 프레시백에 내가 주문한 식료품이…

조민정 기자I 2021.08.19 11:00:05

환경 위해 종이박스 대신 쓰이는 온라인몰 보랭가방
"고양이가 버젓이…수거 제 때 안돼 방치 경우 많아"
쿠팡 "반납 인센티브 제도 실시·훼손되면 폐기"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환경 생각해서 ‘프레시백’으로 주문하는 건데… 고양이가 백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꺼림칙해 종이박스로 시키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길고양이 집‘’전락 쿠팡 프레시백...“소독해도 불안”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우유, 계란 같은 신선식품을 주문할 때 종이박스의 대안으로 널리 쓰이는 ‘보랭가방’. 친환경 배송을 위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랭가방에 길고양이가 올라가 있는 사진 한 장이 최근 온라인에서 거센 논란을 빚었다. “‘캣맘’이 프레시백을 길고양이 급식소로 사용한다”는 비판이 일자, 작성자 A씨는 바로 게시글을 삭제하고 해명을 올렸다. 그는 “반납을 위해 프레시백을 내놓은 사이 길고양이가 올라와 사진을 찍었다”고 해명했지만, 보랭가방 이용자들은 찜찜하다는 입장이다. 안 그래도 운영사 측이 제때 보랭가방을 수거하지 않는 일이 잦아 위생 문제에 대한 불만이 계속해서 나온 탓이다.

구글 검색창에 ‘프레시백 고양이’를 검색하자 나오는 이미지.(사진=구글 캡처)
“아이 있는 집은 불안…환경 포기해야 하나”

온라인 쇼핑몰 업체가 운영하는 보랭가방 배송 시스템은 가장 널리 알려진 쿠팡 ‘프레시백’ 외에도 마켓컬리 ‘퍼플박스’, SSG ‘알비백’ 등이 있다. 쿠팡의 프레시백은 우유, 계란 등 신선식품 배송을 주문할 경우 선택할 수 있으며 배송일로부터 60일 이내 반납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반납하지 않을 경우 지연 사용료 8000원이 부과된다. 부과 기간이 지난 이후 반납이 완료되면 지연 사용료는 자동 환불된다.

그러나 실제 고양이 사진 논란 후 보랭가방 이용자들의 ‘불신’은 폭발하고 있다. 실제 인터넷에서 ‘프레시백 고양이’를 검색하면 고양이들이 버젓이 보랭가방에 자리하고 있는 사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종이박스와 보랭제(드라이아이스 등) 사용을 줄이기 위해 환경을 선택한 소비자 입장에선 위생 문제 때문에 차라리 종이박스를 선택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다.

쿠팡 월정액제 회원인 정모(26)씨는 샐러드나 과일이 싸게 나오면 매번 보랭가방을 선택해왔지만 이번 길고양이 사진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정씨는 “논란이 된 사진엔 길고양이를 위한 물통과 밥그릇이 구비돼 있어서 우연히 고양이가 올라간 찰나에 찍은 사진이라고 믿을 수 없다”며 “저 가방에 내가 주문한 식료품이 담길 수도 있다는 건데 무척 찝찝하고 불쾌하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두 아들을 둔 이모(30·여)씨는 이제 막 100일 된 아기가 있어 위생 문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씨는 “아이들은 균이 발생하면 아파도 말하지 못하는데 아이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너무 치명적이다”며 “고양이 배설물도 충분히 균을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보랭가방 대신 종이박스를 사용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고 걱정했다.

집 앞 복도에 프레시백이 2주 넘게 방치된 모습이다.(사진=조민정 기자)
프레시백, 수거 안 돼 방치…쿠팡 “소독·세척 꼼꼼히”

보랭가방을 길고양이 급식소로 활용하지 않더라도 오랜 기간 외부에 방치할 경우 위생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 점도 문제다. 빌라 같은 곳은 바깥에 노출돼 있어 벌레가 가방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사례도 빈번하다. 정씨는 “업체에서 자주 수거해 가지 않아 집 앞에 쌓여있는 경우도 있었다”며 “2주 넘게 방치된 적도 있다”라고 전했다.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며 프레시백 포장 경험이 있는 김모(20·여)씨는 “인력 자체가 부족해서 수거를 제때 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면서 “이해는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는 건 문제”라고 우려했다. 20대 대학생 B(여)씨는 “유통업체 앱에는 ‘수거 완료’라고 뜨는데 복도에 그대로 있다”며 “복도에 오래 방치하는 것도 민폐 같아서 다음부턴 안 시킬 것 같다”고 말했다.

쿠팡 세척업무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했다는 안모(33)씨는 지나가다가 쓰레기를 담아놓은 프레시백을 본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안씨는 “사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긴 한다”며 “대신 기계가 꼼꼼히 세척하는데다 사람이 한 번 더 손으로 열심히 닦긴 한다”고 설명했다.

쿠팡 측은 지난달 말부터 ‘프레시백 회수 인센티브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수거할 경우 프레시백 한 개당 100~200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회수 불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쿠팡 관계자는 “재사용할 수 없는 수준일 경우 회수한 프레시백은 폐기한다”며 “나머지 프레시백도 모두 꼼꼼히 세척하고 약품 처리까지 철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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