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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대칭 벗고 ''예측 불가능'' 입다

조선일보 기자I 2008.06.12 13:15:38
[조선일보 제공] 2008 패션계는 당신에게 이렇게 주문(呪文)을 건다. 비뚤어지라고. 더욱 더 불균형적이고 비대칭적인 아이템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평범함을 온 몸으로 거부하고 있다. 최근 패션계의 뮤즈(muse)로 떠오른 이 여성만 봐도 그렇다. 바로 영국 출신 팝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Winehouse). 지난 2월 그래미 시상식 '최우수 여성 팝 보컬' 등 5개 부문을 휩쓸었지만 실력 못지 않게 마약 복용 혐의에 각종 폭행 등 구설수도 항시 따라다닌다.

▲ 샤넬 프리 폴 컬렉션(입 생 로랑 /클로에 / 앤드뮐미스터)

▲ 프라다

▲ 마크 제이콥스(왼쪽), 플리츠 플리즈.
■그들은 왜 '나쁜 여자'에 빠졌나

문신투성이 팔, 과장되게 부풀린 머리와 두껍게 위로 치솟은 진한 아이라이너 등 아름답기보다는 기괴함에 가까운 그녀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패션계를 사로잡았다. 그녀를 가리켜 "새로운 브리짓 바르도(50년대 프랑스 배우)"라며 극찬한 칼 라거펠트(Lagerfeld)는 파리의 펜디 스토어 재오프닝 파티에 초청했으며, 루이비통은 파리 컬렉션에 그녀의 공연을 끌어들이기 위해 100만 달러를 기꺼이 지급하기도 했다. 멀버리의 새로운 슈즈 라인을 책임질 영국 출신 탑 슈즈 디자이너 조너선 켈시(Kelsey)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헌정하는 의미에서 '에이미'란 이름의 구두를 출시했다.

브래지어 끈이 떨어져 옷핀으로 고정한 채 앙상한 팔을 드러내며 어기적 어기적 걸어 다니는 그녀는 단연 '워스트 드레서'감으로 보이지만, 그녀가 기행(奇行)을 부리면 부릴 수록 패션계는 더욱 사랑할 뿐이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씨는 "칼 라거펠트의 경우 그가 특히 좋아하는 하드 코어의 대담한 주얼리, 미래적인 구두 등 다양한 콘셉트가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헤어 스타일과 화장법까지도 거의 비슷하게 재현한 샤넬의 2008 프리 폴(Pre-Fall) 컬렉션이 그 해답"이라고 말했다. 

▲ 로이터
■가능한 건 '예측 불가능함'

에이미 와인하우스에게 떠오르는 단어 '불안정'과 '불균형'은 이번 시즌 패션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바로 '비대칭'(Asymmetry)이다. 지난해 12월 런던에서 열렸던 샤넬 프리-폴 컬렉션을 필두로 2008~2009 봄·여름뿐만 아니라 가을·겨울 컬렉션까지 비대칭·불균형의 화법은 무대를 사로잡았다.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Jacobs)는 아예 "변덕스럽고 괴짜처럼 독특한 패션쇼"를 내걸고 과장되게 부풀린 헤어 스타일과 악마 뿔을 연상시키는 머리 장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가방 위 가방(Bag on Bag)'. 사각형 토트백 위에 기존 스탬(Stam) 가방을 덧댄 모양이다. 일명 세라피마(Serafima) 백으로 불리며, 스탬 백이 유명 모델 제시카 스탬의 이름을 딴 것처럼 이 가방 역시 유명 모델 세라피마 바큘렌코(Vakulenko)의 이름을 땄다. 그다지 실용성이 있는 것도, 미학적으로 유혹적인 것도 아닌 듯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전혀 다른 반응이다.

마크 제이콥스의 남미림 홍보 담당자는 "대형 사이즈는 300만원을 훌쩍 넘기는 데도 매장에 들여놓는 대로 팔려 현재 예약 주문을 넣고 있다"고 말했다. 주름 하나도 비대칭 포인트로 응용된다. 프라다의 이번 시즌 스커트가 바로 그렇다. 프라다의 김지현 대리는 "곡선형태의 주름이 의상의 전체 중 일부분에 디자인 돼, 마치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액세서리 역시 비대칭이 인기. 영국 패션 전문가 룰루 케네디는 영국판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귀걸이를 한쪽만 하거나 한쪽으로만 심하게 치우친 목걸이를 하는 등 의상뿐만 아니라 액세서리에도 비대칭의 영향은 크다"고 전했다.


■"대칭은 지루해 '그레코-로망' 스타일로!"

운동화의 모양을 띈 킬러 힐, 좌우 장식이 다른 구두, 한쪽만 과장된 귀걸이 등 액세서리는 파격을 향하지만 '비대칭' 의상이 쇼 무대에 오를 땐 또 한번의 변용을 겪는다. 그리스 여신풍의 드레스와 교접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레드 카펫 드레스의 대명사 모니크 륄리에나 2002년 할리 베리의 오스카 시상식 드레스로 유명세를 날린 엘리 사브, 베라 왕에서 클로에까지 한쪽 어깨 부분만 화려하게 장식되고 다른 어깨를 확 드러낸 비대칭 드레스를 족족 내 놓았다. 일명 '그레코-로망' 스타일. 레슬링에서나 듣던 용어가 패션에서 화려하게 주목 받고 있다. 뉴욕 패션 스타일리스트 가글리아디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플래시 댄스'의 제니퍼 빌스에서 착안한 80년대 스타일이 우아하게 표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미국방송비평가상 협회가 주관하는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 나선 영화 배우 케이티 홈즈는 한쪽 어깨를 드러낸 토가(toga) 스타일의 랑방 드레스를, 케이트 허드슨은 비슷한 스타일의 비대칭형 크리스챤 디올 드레스를 입고 나오기도 했다. 로마 시대 전사들의 신발에서 착안한 글래디에이터 샌들과 결합해 '그레코-로망 스타일'은 할리우드 배우들의 교복처럼 돼 버렸다. 하지만 유행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이 다 귀네스 팰트로처럼 여신의 이미지를 갖는 건 아니다. 키가 작은 여성은 아무리 끌린다고 해도 마음을 접을 것. 패션 칼럼니스트 길 하트는 "여신처럼 보이기는커녕 감자 포대를 엎어 쓴 것 같을 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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