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럴까]이호성과 크리스 베노아

이데일리SPN 기자I 2008.03.11 13:57:50

 
[이데일리 SPN 백호 객원기자] 2007년 6월 26일(한국시간) WWE 현역 프로레슬러 크리스 베노아(Chris Benoit•당시 40세)가 조지아주 자택에서 아내, 7살 난 아들과 함께 죽은 채 발견됐다.

처음엔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WWE에서는 매주 월요일 여는 TV 프로그램 ‘러(RAW)’에서 즉시 베노아 추모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뒤 베노아 일가 참사(慘死)의 범인은 베노아 자신임이 밝혀졌다. 베노아가 가족을 모두 죽인 뒤 자살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WWE는 물론, 전 미국이 놀라움에 휩싸였다.

2008년 3월 10일 한국에서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당시 41세)이 한강에서 투신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는 이미 마포 일가족 4명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수배된 상태였고, 그의 자살은 그 혐의를 사실상 확정시켜 주었다. 역시 야구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베노아와 이호성, 1967년생 동갑내기인 둘은 한 해 간격으로 흉악한 범죄행위를 저질러 불행하게, 그리고 불명예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 40년을 살았고 자기 분야에서 자랑스러운 경력을 쌓았으나 순간의 잘못으로 이전의 모든 영광을 무의미하게 해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모두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노아는 WWE 베테랑 선수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인간미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에지(Edge), 바티스타(Batista) 등 WWE를 대표하는 신진급 스타들이 평소에 ‘가장 귀감이 되는 선배가 누구냐’는 질문에 쉽게 베노아를 꼽았을 정도다.

베테랑 여성 레슬러인 빅토리아(Victoria)는 사건 후 "베노아는 특히 아들을 너무 예뻐해 거의 숭배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들을 죽이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호성도 해태에서 같이 선수생활을 했던 사람들로부터 "엄했지만 남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다"는 평을 이구동성으로 듣고 있다. 이호성은 사업이 어려워진 뒤 사기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기는 하나, 폭력과 같은 사안으로 형사상 문제를 일으킨 바는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모두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회복할 수 없이 깊이 손상된 정신이 놀랍도록 파괴적인 행위를 낳은 것이다.

베노아는 오랜 시간 스테로이드계 근육강화제와 각종 진통제를 남용했다. 그리고 프로레슬러로서 뇌에 지속적인 충격을 받은 것도 끔찍한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특히 공중을 날아 머리로 상대를 공격하는 '플라잉 헤드벗(flying headbutt)'이라는 기술을 특기로 했다. 베노아의 뇌를 부검한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 줄리안 베일스 교수는 "뇌 손상이 매우 심하다. 마치 85세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같다"고 밝혀 충격을 안겨줬다. 과거 베노아처럼 뇌 손상을 입은 미식축구 NFL 퇴역 선수 중 몇몇도 자살, 폭력 등의 문제를 겪은 바 있었다.

이호성은 뇌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 같지만 거듭된 불운으로 인해 영혼이 망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돈에 의해 인간성이 파괴된 전형이라고 하겠다.

이호성이 왜 그런 범행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뒷날 밝혀지겠지만, 그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든 건 분명 돈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노아는 2004년 프로레슬링 세계 최대 행사인 제20회 '레슬매니아'에서 최고 스타인 트리플 H(Triple H)와 숀 마이클스(Shawn Michaels)를 한꺼번에 꺾고 WWE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올라 자기 생애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WWE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혔고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이호성은 최강 해태 타이거즈의 주축 타자였고 두 차례 골든글러브를 끼었다. 4차례(91, 93, 96, 97)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통산 100홈런을 넘겼다. 선수 시절 많은 인기를 누렸다.

베노아와 이호성의 비극은 우선 인간 삶의 무상함을 말해주지만, 특히 스포츠 스타플레이어 인생이 결코 쉽지 않음을 웅변한다. 베노아의 화려한 기술을 보는 팬들이 그에게 예정된 비극적인 운명이나 그의 머릿속 파괴된 뇌세포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듯이, 우리는 오늘날 그라운드 위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로부터도 뼈아픈 어려움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화려해도 그들도 인간이다. 팬들은 보다 따뜻이 스타들을 사랑해줘야 하겠고, 스타들은 팬들을 위해서라도 인생 관리, 몸 관리를 잘 해주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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