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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미사일지침, 1979년 제정…10년에 한 번꼴 개정(종합)

김관용 기자I 2017.07.29 15:55:22

北 미사일 능력 고도화…한·미, 지침 개정 협상 시작키로
국산 탄도미사일 탄두 중량 증대 추진
사거리 800km 탄도탄, 탄두 중량 500kg→1t까지 늘려
北 주요시설에 대한 파괴력 강화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한·미 양국이 29일 우리가 개발하는 미사일의 탄두 중량을 늘리기 위한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의 시험발사 등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따른 억제력 확보 차원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오늘 새벽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NSC)의 전체회의가 끝난 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협상을 개시하도록 미측과 협의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 실장은 이날 새벽 3시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과의 통화에서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 개시를 공식적으로 제의했다. 이에 맥매스터 보좌관은 오전 10시 30분경 협상 개시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한·미 미사일 지침, 사거리 제한 180km→300km→800km 개정

지금까지 한미간 미사일지침 합의는 3차례 진행됐다. 이를 한 번 개정하는데 10년 씩 걸렸다.

한국은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국산 탄도미사일 ‘현무’의 첫 이름인 ‘백곰’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미사일 관련 기술이 없었던 우리는 미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미국이 미사일 관련 기술 이전을 거부하면서 현무 사업은 좌초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한·미 미사일 협정이다.

우리 정부는 당시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개발 지원을 받는 대신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180㎞로 제한하기로 했다. 1979년 맺은 한미 미사일 개발에 관한 자율규제 지침이다. 이에 따라 현무의 사거리는 180km 밖에 되지 못했다.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를 180km로 제한하고도 의심을 버리지 못한 미국은 재차 국산 미사일 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표면상 이유는 한국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9일 공개한 전날 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 미사일의 2차 시험발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1990년 10월 1차 한·미 미사일 협정에 서명해야 했다. 사거리 180km, 탄두중량 500kg 이상의 어떤 로켓 시스템도 개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강요로 탄도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동안 북한은 미사일 개발을 지속했다. 1989년 사거리 1350km의 노동미사일에 이어 1998년 사거리 2600km의 대포동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우리 정부는 2001년 미국을 설득해 기존 미사일 합의를 폐기하고 미사일의 사거리를 300km(탄두 중량 500kg)로 늘리는 것으로 미사일 지침을 개정했다. 미국은 한국이 ‘미사일 기술 수출 통제협정(MTCR)’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미국이 전술지대지 탄도미사일 에이태킴스(ATACMS)의 한국 판매를 위해 지침을 개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은 당시 사거리 300km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할 수 없었지만 사거리 165km의 ATACMS 블록1과 사거리 300km의 ATACMS 블록1A를 각각 110발씩 미국으로부터 도입했기 때문에 이 지침은 개정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지침 개정으로 우리는 비군사적 분야에서의 로켓 시스템 개발이 가능해졌다. 특히 탄도미사일이 아닌 순항미사일에 대한 규제도 상당 부분 완화됐다. 사거리 1000㎞ 이상의 순항미사일 ‘현무-3’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사거리 800km 현무-2C, 탄두 중량 500kg→1t 증가 추진

우리 정부는 2011년 다시 미국과 미사일 사거리 연장 협상을 시작했다.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미사일 사거리를 확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거리 300km의 탄도미사일로는 군사분계선(DMZ) 인근에서 발사해도 함경북도까지 타격할 수 없다.

2012년 10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순방기간 중 협상 끝에 미사일 사거리를 800㎞로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탄두 중량은 500㎏으로 유지됐다. 그러나 사거리를 줄이면 탄두 중량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거리 300km 탄도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2톤까지 가능해졌다. 500km 성능의 미사일은 탄두 중량이 1톤, 사거리 800km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탄두 중량은 500㎏으로 제한된다.

지난 6월 23일 충남 태안 국방과학연구소(ADD) 종합시험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참관 하에 사거리 800km의 탄도미사일인 현무-2C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출처=국방부]
우리 군은 현재 사거리 800km의 현무 미사일(현무-2C) 전력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6월 국방과학연구소(ADD) 종합시험장을 방문해 현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한바 있다.

사거리 800km의 현무는 중부 이남 지역에서도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그러나 탄두 중량이 500kg 밖에 되지 않아 파괴력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사거리를 1000㎞로 늘릴 경우 제주도에서도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넣을 수 있지만 중국과 일본도 사정권에 들어가 주변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을 통해 미사일 탄두 중량 증가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윤 수석은 브리핑에서 “자체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할 때 사거리 탄두 중량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사거리 800㎞ 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500㎏으로 돼 있었는데 그 부분을 늘리는 방향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800㎞ 미사일의 탄두 중량이 1톤으로 늘어날 경우 500㎞ 미사일은 1.5톤, 300㎞ 미사일은 2톤으로 각각 탄두 중량을 늘릴 수 있다. 북한 지하벙커 등을 우리 탄도미사일로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진다는 의미다. 기존 500㎏ 탄두로는 파괴할 수 없었던 북한 후방 지역의 지하 미사일 기지 등의 강력한 지하 시설도 1톤의 탄두로는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무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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