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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김기춘 직권남용 '무죄'…양승태 사법농단은?

송승현 기자I 2018.10.25 09:00:00

檢, 임종현 영장청구…양승태 등 최고위직 본격 수사
잇단 직권남용 무죄…"권한 아닌 지위 이용 불법행위"
재판개입 불가능 이유 들어 사법농단 무죄 가능성↑
檢 "사법행정 이용한 재판개입, 직권남용 적용 충분"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2012년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연이어 지내며 법원행정처 주요 실무를 총괄한 임 전 차장은 수사 초기부터 이번 사건의 의혹을 풀 핵심인물로 지목됐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검찰이 사법농단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58)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4차례 소환해 조사한데 이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을 공범으로 적시하는 등 윗선 수사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최고위직 수사에 본격 돌입했다. 그러나 최근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주된 적용 혐의가 될 것으로 보이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법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 등 다른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법원이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도 직권남용죄에서 직무권한에 대해 좁게 해석해 무죄를 선고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김기춘 등 직권남용 무죄…“직권남용 아닌 불법행위”

양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등 사법농단 사건 주요 피의자들에겐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된 상태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키거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검찰은 임 전 차장 등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국제인권법 소속 판사들 정보를 수집케 하는 등 위법한 업무를 시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도록 했다고 본다.

현행법상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를 했을 때 직권남용죄와 강요죄가 적용될 수 있다. 강요죄의 경우 협박 또는 폭행에 준하는 위력이 행사됐을 경우 처벌할 수 있다.

일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1심과 2심에서 현대차그룹에 플레이그라운드 광고 발주를 압박한 혐의에 대해 강요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요구가 피해 당사자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직권남용죄는 단순히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로는 처벌할 수 없다. 불법행위를 하게 된 권한이 본래의 직무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법원은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화이트리스트 사건’,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전 경제부총리) 채용외압 사건에서 일제히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대통령 1심 재판부는 다스의 미국 소송에 공무원들을 동원한 혐의 등에 대해 “다스 소송은 이 전 대통령의 개인 사안일 뿐 대통령 직무와는 관련 없다. 이는 직권남용이라기보다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해 직권남용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김 전 비서실장과 최 의원의 재판을 맡은 재판부도 각각 “일반적 직무 권한에 속하지 않는다”,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증거가 없다”며 직권남용에 대해 무죄로 판시했다.
지난 9월 6일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깐깐해진 직권남용 인정 여부…사법농단과는 별개라는 의견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 직권에 대해 명문이 없는 경우라도 법·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해서 그것이 해당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되는 경우 공무원의 권한으로 본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또는 한 기관의 장과 같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무원은 법령상 규정 말고도 직무권한의 폭을 넓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개별 재판에서 직무권한의 폭을 정하는 것은 판사의 영역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하급심에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직권남용죄에 대해 너무 좁게 해석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재판개입은 사법부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이유로 사법농단 재판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법농단 사건의 경우 직무권한이 명확해 직권남용죄 성립이 어렵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법농단의 한 예로 거론되는 ‘통합진보당 재판 개입’의 경우 법원행정처가 국정감사 대비라는 이유로 선고기일 연기 등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재판개입은 어떤 명문으로도 존재할 수 없고 사법행정을 동원한 것에 대한 결과”라며 “국정감사 협조 등의 이유로 재판에 개입했다면 ‘일반적 직무권한’이 남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요죄의 경우 폭행이나 협박을 당했다는 피해자 진술이 핵심인데 법관들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개입을 인정할 리 만무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또 검찰이 위력을 증명하기도 쉽지 않아 적용이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검찰은 법원이 직권남용죄의 직무권한을 너무 좁게 해석하는 것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법원이 제 식구들인 판사들이 재판을 받게 될 사법농단 사건에서도 이같이 협소하게 직권남용죄를 해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죄는 국민에게 위임을 받는 공무원이 공무수행 중 그 직위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형사처벌하는 유일한 법조항”이라며 “사법행정 법관은 재판 등을 지원하기 위한 광범위한 권한이 있다. 재판에 개입하거나 반헌법적 검토를 시키면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직권 범위를 기존 대법원 판례보다 좁게 해석해 사각지대를 만들 이유가 없다”며 “뇌물죄는 적용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금까지 대법원이 유지해온 기준에 맞춰 수사하고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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