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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광주와의 일곱 번째 만남`이란 글에서 “대구 출신의 한 대학생이 `80년 광주`와 만나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어왔다”며 “`대구의 아들`인 저를 많은 광주 분들이 `광주의 아들`로 따뜻하게 품어주셨다. 앞으로 걸어갈 미래도 결국 광주와 함께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8·29 전당대회 당 대표 출마 선언을 앞둔 이낙연 의원에 맞서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민심 잡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의원은 오는 9일 출마 선언에 앞서 8일까지 광주와 전북지역을 방문해 지역 언론과 잇달아 간담회를 하는 등 호남 지역 여론전에 나선다.
김 전 의원은 “어린 시절 예비역 공군 중령이신 아버님의 근무지였던 광주를 방학 때마다 찾았다”며 “1980년 5월 신군부의 만행을 알리고자 유인물을 찍어 서울 금호동, 옥수동 산동네에 뿌렸다”고 돌이켰다.
광주와의 세 번째 만남은 서울역 광장이었다.
그는 “1980년 5월 `서울의 봄`, 이른바 서울역 회군 때 군부의 개입을 우려한 나머지 철수하자는 결정에 반대하고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그 때 회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더라면, 계엄군의 총부리가 광주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시위 현장을 지켰던 제 가슴은 광주에 대한 부채감과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복받쳤다”고 썼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지역주의, 기득권, 과거`라는 세 개의 벽을 깨기 위해 낙선을 각오하고 대구 출마를 강행한 이유 역시 `80년 광주`에 대한 부채 의식때문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광주가 대구에 내밀어 준 따뜻한 손길에도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5일은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진흥고를 졸업한 이한열 열사의 33주기 기일이었다”며 “한열이 앞에 부끄럽지 않게 정치하겠다. `광주 정신`에 따라 뚜벅뚜벅 가겠다”고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