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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안대용 기자]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M&A)과 관련한 투자자-국가간 국제중재(ISD) 사건의 한국 정부 패소 판정이 확정되면서 현재 외국기업과 정부 사이에 진행 중인 ISD 중재 판정이 어떻게 결론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ISD 첫 패소 확정인데다가 남아 있는 ISD 사건의 청구금액도 천문학적이란 점에서 정부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22일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대표적인 ISD 사건으로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사건과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기한 사건이 있다. 론스타 사건은 청구금액만 해도 46억7950만달러로 원화로 5조원이 넘는 초대형 사건이고 엘리엇 역시 7억7000만달러(원화 약 8940억원)에 이르는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론스타는 지난 2012년 11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ISD를 제소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 과정에서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했고 국세청의 차별적 관세로 부당하게 세금을 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 어려움을 겪던 외환은행을 지난 2003년 1조4000억원으로 헐값에 인수했다. 이후 외환은행을 HSBC에 팔아 넘기려 했지만 한국 정부가 승인을 미루면서 무산됐고 지난 2010년에야 하나금융그룹에 외환은행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외환은행 매각 지연과 부당과세로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론스타 측 주장이다.
국제중재 전문가인 A변호사는 “냉정하게 봤을 때 론스타 건의 경우 우리 정부가 불리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며 “금융위와 법무부 등 정부 기관들도 이런 분위기를 미리 흘리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론스타와의 ISD를 두고 어두운 전망이 나오는 결정적 이유는 한국 정부가 `유리한 카드`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부분 때문이다. 지난 2015년 1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ICSID로부터 확인한 문서에 따르면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지위는 분쟁 대상이 아니라고 론스타와 한국 정부가 합의했다`는 취지로 론스타 측이 주장했다. 즉 ICSID가 보내온 론스타 측 주장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ISD 제소 요건과 직결되는 쟁점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비금융주력자는 계열회사 중 비금융회사의 자본총액이 해당 회사 전체 자본총액의 25% 이상이거나 비금융회사의 자산총액 합계액이 2조원 이상 등에 해당하는 산업자본을 말한다. 금산분리 원칙상 비금융주력자는 은행을 인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대주주 적격성이 없는 산업자본이었다는 점을 부각한다면 ISD를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 쟁점 다툼을 한국 정부가 포기하면서 만만찮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분석이다.
7년간 진행된 론스타와의 ISD는 당초 올해 9~10월 결론이 날 것으로 예견됐으나 사실상 또 한 번 해를 넘기게 됐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지난해 제소한 ISD도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승인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배상을 요구한 상태다. 엘리엇은 “한국 정부가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경제적 이익을 돕기 위한 조치를 취했고 합병 당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조종했다”고 주장하면서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법원 판결을 언급한다.
이에 대해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56·사법연수원 30기) 변호사는 “엘리엇과의 ISD는 아직 쟁점이 본격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모 아니면 도”라고 예상했다. 다만 송 변호사는 “주주라는 자격은 동일한데 다른 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서 엘리엇이 자신들의 의사와 다른 의사결정을 했다고 해서 문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라며 “엘리엇의 재산권이 침해받았다는 법리는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