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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공정위의 소신, 미래부의 소신

김현아 기자I 2017.07.01 14:46:14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공무원들이 전부 그렇지는 않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공무원들은 표에만 관심 있는 정치권이나 청와대의 잘못된 지시에 저항해왔다.

정유라 씨 때문에 진행된 대한승마협회 감사에서 “최 씨와 그 반대쪽 모두 문제 있다”는 결과를 내서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참 나쁜 사람’이라 지목받아 경질된 노태강 문체부 전 체육국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새 정부들어 문체부 2차관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 공판에서 드러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불허’와 관련된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의 행위나 ‘통신비 인하’ 정책을 끌고 가는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을 보면 ‘공무원의 소신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경제 검찰임을 자부하는 공정위는 작년 6월까지 단 한차례 합병불허 보고서를 내지 않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입장을 180도 바꿔 한 달 뒤 불허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이를 SK 측이 최순실 씨의 89억 원 지원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서라고 보고 있고, 공정위 담당자도 법정에서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심사가 지나치게 지연된 이유도 법정 증언으로 드러났다. 4.13 총선 때(이 합병에 반대했던 SBS 등)지상파 방송사들이 당시 여권에 부정적인 방송을 할까 걱정해서였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중요한 사안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 자체를 문제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합병이 갖는 방송·통신 시장의 파급력을 고려했을 때, 공정위는 존재이유인 경쟁제한성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로 결정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드론 산업을 키우자’는 지시를 대통령 등 윗선에선 할 수 있지만 ‘내 친척이 하는 드론 업체를 콕 찍어서 드론 지원책을 만들라’고 지시해선 안 되고, 설사 지시가 있더라도 공무원은 따르면 안 된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이 인수합병 업무를 맡았던 직원들에게 지난해 8월 ‘이달의 공정인’상을 주기까지 했다. ‘관련 시장의 경쟁제한적 우려를 해소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기여했다’는 게 수상이유였다.

하지만 공정위의 정책판단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디어 시장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9일 열린 ‘4차 산업혁명과 새 정부의 역할’을 주제로 한 9개 ICT·미디어 학계 연합 특별 세미나에 참석해 “4차 산업혁명에서 통신사에 비해 투자여력이 없는 SO(케이블TV)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라며 “공정위 논리에 비추면 LG유플러스가 인수하려 해도 금지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미래부 통신비 인하 논리 변화도 걱정

‘최순실 게이트’라는 구린내가 나는 공정위 사례와는 온도 차가 나지만, 미래창조과학부의 최근 ‘통신비 인하’ 행보 역시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만 해도 15년 이상 “통신비 인하는 경쟁 활성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가, 갑자기 “보편 요금제를 통한 요금제 설정권이 정부에 필요하다”는 논리로 180도 바꿨다.

게다가 알뜰폰이나 유통협회 같은 통신 생태계 종사자들이 생존을 걱정하는 부분을 애써 눈감고 절차과 방법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래부는 보편 요금제는 취약계층의 통신비 부담이 크고 저가 요금제가 경쟁에서 소외된 점을 고려한 것으로 경쟁에 의한 통신비 경감을 부정한 게 아니며, 보편 요금제 도입과 관련한 도매대가 특례 등이 포함돼 알뜰폰 죽이기는 아니라고 공식 해명했다.

하지만, 2만 원 대 보편 요금제는 이미 우체국 알뜰폰에 있다. 그럼에도 대중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이통사에 출시를 강제하려 하는 것이다. SK텔레콤에 비슷한 상품이 있다면 누가 알뜰폰을 쓰겠는가.

미래부는 보편 요금제를 메기로 해서 이통3사의 요금을 통제하려 한다는 설명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의 요금제 설정권 강화가 취지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인가제를 폐지해 경쟁을 활성화한다는 게 앞뒤가 맞는 말인가.

“미래부가 현 정권에서의 생존을 위해 하루아침에 통신사들을 적폐대상으로 몰아간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인 5G기반 네트워크 투자 문제는 외면한다”는 업계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 대비는 어디서…유영민 후보자 소신 관심

더 큰 문제는 미래부의 모든 정책이 통신비에 올인하다보니 4차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지는 미래 성장동력이나 일자리 창출 같은 더 중요한 화두들은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어찌 보면 우리의 먹을거리나 일자리 등에서 훨씬 더 중요한 이슈가 많은데 ICT 정책 중 통신비를 먼저 들고 나온 것은 이 분야에 대한 관심도나 우선 순위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준 게 아닌가”라며 “민간인이 위원장인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결국은 껍데기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4차 산업혁명은 불확실성에 대한 관리와 IT 업종과 금융·의료·유통·자동차 등 해당 업종 간 갈등조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시행령 수준에서 존립 근거를 갖는, 총리급 민간인이 위원장인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부처간 이견까지 조정해 법 개정을 이끄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미래부 장관은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부위원장이다. 유영민 미래부 장관 후보자가 7월 4일 인사 청문회에서 통신비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소신을 어떻게 밝힐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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