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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최대 투자국, 독일 기업들도 발 뺀다

최정희 기자I 2014.12.29 10:35:40

러시아 진출 獨기업 3분의 2는 투자 미루거나 취소
러 불안하면 독 경제도 부정적..`러 경제적 제재` 반대 쇄도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냉전시대 이후 러시아의 최대 투자국이었던 독일이 서서히 발을 빼고 있다.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루블화 추락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경제적 위기가 고조되자 러시아에 정착한 6000개 넘는 독일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거나 철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독일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러시아 경제가 흔들리면 독일로서도 손해다. 독일 내부에선 러시아를 더 옥죄는 서방국가의 경제적 제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다.

◇ 러시아와 거래 줄이는 독일 기업들
<자료: 뉴욕타임스(NYT)>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 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연간 무역박람회에 참석해 빨간 색 자동차에 앉아있다.
주독 러시아상공회의소가 지난달 200여개 러시아에 진출한 독일 기업을 조사한 결과 3분의 2 이상이 투자를 취소하거나 미룰 계획이라고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조사 대상 기업 중 41%는 투자를 미룰 것이라고 밝혔으며 36%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투자 계획을 취소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28%는 러시아 근로자들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주 독일 최대 화학업체인 BABF는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인 가즈프롬과의 거래를 취소했다. 의료서비스 전문업체인 프리제니우스도 러시아 파트너와의 제약합작회사 계획을 파기했다. 폭스바겐은 수요 부족을 이유로 칼루가에 위치한 공장의 문을 15일간 닫았다. 제너럴모터스(GM)의 유럽 사업부격인 오펠(Opel) 역시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1600개의 일자리 중 500개가 사라졌다.

러시아에서 독일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축소하거나 취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와의 군사적 갈등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독일 기업들 뿐 아니라 주요 정치인들의 모임 등 수 많은 포럼 등의 행사가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경제적 고통은 더 심해지고 있다. 독일이 러시아의 최대 투자국인 만큼 러시아의 독일 의존도도 그 만큼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내년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파른 침체가 예상되는 반면, 독일은 1%의 경제성장률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독일의 경제적 연관관계가 깊은 만큼 러시아의 경제침체 역시 독일 경제엔 부정적이다. 독일 전체 수출의 10%가 러시아로 가는 데 지난 10월 러시아 수출이 22% 가량 감소했다. 독일 퀠른에 본사를 둔 BMW, 메르세데스 등 독일의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러시아에서 150억유로(20조원) 가량의 판매수익이 감소했다. 2017년엔 이들의 전체 이득은 6억유로(8000억원)에 불과할 것이란 게 뒤스부르크 에센 대학의 페르디난드 두덴호퍼 교수의 추측이다. 다른 산업 역시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 카탈로그 방식의 소매업체인 오토는 루블화 하락을 보상받기 위해 러시아에서 판매가격을 인상했다. 그로 인해 지난 주 수익이 다소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6월보다 30% 가량 낮은 수준이다.

◇ 러 흔들리면 獨도 손해..`제재 풀어라`

이에 따라 독일 내부에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 부총리 겸 경제·에너지장관인 지그마르 가브리엘 사회민주당(SPD) 당수와 외무장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는 “러시아의 경제적 제재가 경직된 러시아 경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며 “경제적 제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강력한 후원자인 비즈니스 업계도 사회 민주당의 뜻에 동의하며 경제적 제재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동유럽경제관계위원회의 에크하르트 코르데스 위원장은 “경제적 제재는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반군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평화협정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CNBC가 보도했다.

다만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가 독일 기업의 투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이미 사업환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단 분석이다. 독일 최대 보험회사인 알리안츠생명은 러시아에서 불만을 가진 고객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판매 정책을 변경했다. 러시아 현지법원은 보험사에 고객 불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러시아 진출 기업의 한 관계자는 “독일 기업인들은 계속 러시아에 있길 원한다”면서도 “변동성이 심한 러시아 시장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독일 기업의 러시아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깊은 편이다. 러시아 진출 기업의 3%만이 러시아를 떠나길 희망한다는 게 상공회의소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이 회복되고 평소처럼 사업을 할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단 설명이다. 몇몇 기업은 지금도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베어링 생산업체인 셰플러는 10월 울리야노프스크에서 러시아의 첫 번째 공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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