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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 혁명)③이슬람의 두 얼굴 `율법과 금융`

강남규 기자I 2006.06.09 13:50:01
[이데일리 강남규기자] “이슬람 사회는 금융에 대해 너무나 이중적이다. 외부인에게는 역겹게 보일 수도 있다.”

미국 뱅커스 트러스트 직원으로 중동지역에서 오랜 기간 일한 바 있는 아랍인 무하마드 살렘은 지난 1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이슬람 금융계의 모순된 현실을 꼬집은 이야기다. 이슬람의 금융세계를 이해하려면 바로 이런 이중성을 파악하고 들어가야 한다. 

이슬람 세계의 이중성이란 겉으로는 `이자와 리스크 감수`라는 금융투자의 기본 개념을 금기시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돈장사에 눈을 뜨고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금융수단을 이용해 자산증식에 발 벗고 뛰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는 서방의 투자 귀재를 능가하는 놀라운 투자기술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이를 터부시 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중앙은행에 `은행`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이자`를 `이윤`으로 바꿔 불러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이슬람이다.  

◇ 중동의 투자귀재 ‘알버핏’..투자는 `과감` 신앙은 `독실`

이슬람 사회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체현한 인물이 바로 세계 2위 부자로 꼽히는 사우디의 알 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라지즈 왕자(사진)이다. 서방 세계에는 알 왈리드 왕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별명은 ‘워렌 알버핏’이다. ‘오마하 현인 워렌 버핏’에 빗댄 명칭이다. 그는 2005년 말 기준으로 150억달러가 넘는 자산을 운용하며 연간 5억달러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시티그룹을 비롯해 GM 대우와 현대 자동차, 애플 컴퓨터, 유로 디즈니, 넷스케이프, 삭스 지주회사 등에 26억달러를 투자했는데 그의 지분 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88억달러에 이른다.

알 왈리드 왕자는 기업이 극심한 위기일 때 투자를 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유명하다. 그는 위기에서 본능적으로 기회를 포착할 줄 안다.

시티그룹이 남미에 제공한 여신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공급한 자금의 부실화로 붕괴 위기에 몰린 1990년 그는 이 은행의 지분 4.9%를 매입했다. 놀랍게도 시티그룹의 위기는 이후 2주 뒤에 진정됐고, 1994년에 주가는 비상했다. 알 왈리드 왕자는 이후 유로 디즈니와 대우 자동차에도 자금을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이슬람 율법이 금한 `리스크 감수`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알 왈리드왕자가 연간 1억달러를 자선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그의 연간 소득이 5억달러 인점에 비춰볼 때 그의 자선 비중은 연소득의 20%에 이른다. “알라는…적선을 보상한다”는 코란의 구절을 철저하게 믿고 있는 독실한 신자의 모습이다.

또한 그는 율법이 규정한 원칙에 따라 일상생활을 유지하기로 유명하다. 평민들과 함께 금식기도 주간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은 물론, 해마다 중근동 지역의 이슬람 성지를 빼놓지 않고 순례한다.

영국 런던 칼리지에서 화폐 금융론을 전공하는 이브라임 이비는 “자산을 굴려 금융소득을 얻고 있는 이슬람 부호들은 율법을 어긴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듯이 자선사업에 열 올리고 있다”며 “왈리드 왕자가 바로 그런 계층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 “율법이 돈놀이를 금지하니 짐은 금만 받겠다"

돈벌이와 율법이라는 이중성은 이슬람 사회가 현대 금융과 본격적으로 조우한 1930년대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사우디 왕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스탠더드 오일은 당시 사우디 재무장관인 압둘라 술라이만과 협상해 3만5000파운드를 지급하고 석유 채굴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대금 지급방법이었다.

당시 사우디에는 근대 금융회사의 원형인 전당포마저도 없었다. 네덜란드 소형 은행들이 일부 진출해 영업하고 있었지만,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그 금액을 중개할 능력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사우디 국왕은 율법의 가르침대로 화폐를 불신하며 금을 요구했다. 결국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금융회사인 개런티 트러스트와 협의해 프랑스 파리에서 금을 조달해 지급해야 했다.

재무장관 술라이만은 이후 석유 채굴권 대가로 받은 금을 모두 자신의 침실 바닥에 토굴을 파고 보관했다. 이후 금이 급증하자 별도 건물을 지어 폭 21미터, 길이 21미터, 높이 2.5미터짜리 금고를 만들어 서방 기업이 건네준 금을 수납한다.

사우디 왕국은 이후 20여년 동안 고집스럽게 화폐를 거부했다. 하지만, 석유 채굴이 급증하면서 늘어난 금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 상황이 된 1950년대에야 중앙은행을 설립했다.

◇사우디에 중앙은행이 없다?..이윤은 `OK`, 이자는 `NO` 

사우디 정부는 1500만 달러의 초기 자본금 전액을 왕실이 부담하며 1952년 중앙은행을 설립한다. 하지만 독실한 무슬림의 반발이 두려워 ‘사우디아라비아 은행’이라는 간판을 차마 내걸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붙인 이름이 바로 ‘사우디아라비아금융에이전시(SAMA)’이다. 이 이름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중앙은행을 설립했지만, 업무를 담당할 금융 전문가가 중동 일대에서는 존재하지 않아 결국 파키스탄 출신이면서 국제통화기금(IMF) 중동담당자인 안와르 알리가 총재로 영입됐다.

알리는 취임 이후 사우디 정부가 보유한 금을 처분해 달러와 파운드, 프랑 등 외환으로 바꿔 서방 은행에 예치했다. 하지만 자금 예치로 받은 이자를 이자소득으로 장부에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계정이름이 바로 ‘금융거래 이윤’이었다.

이슬람 율법이 정상적인 상거래를 통한 이윤을 인정한다는 점을 활용해 ‘이자’라는 말 대신 ‘이윤’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다.

이렇게 이중적인 환경에서도 요즘 사실상 채권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고 뮤추얼펀드와 사모펀드 뿐만 아니라 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도 개발돼 있다. 심지어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도 하다. 서방의 금융이 법규의 규제를 우회하느라 혁명적으로 변했듯이 중동의 금융은 율법과의 모순 속에서 변화의 가속도를 붙여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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