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투자다변화는 대세)②왜, 어떻게 다변화하나

정영효 기자I 2007.04.27 12:25:08

弱달러·反美 등 복합요소가 투자다변화 유도
韓 KIC·中 롄후이공사 이어 日·臺·러시아도 방안 모색

[이데일리 정영효기자] 이대일씨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때내 부지런히 저축하는 것이 부자되는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이다. 맘먹고 하는 재테크라야 장기 적금에 가입하는 정도니 소위 `보수적`인 투자자인 셈이다.

그러던 어느날 거래은행이 예금 이자율을 낮추기 시작했다. 이자 소득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도 억울한데 여기저기서 성공적인 재테크 사례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각종 펀드에 가입해서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부터 부동산을 사뒀더니 자고 일어나니 두배로 뛰었더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다못해 예금을 하더라도 하루만 예치해도 이자가 붙는 적립식 펀드나 CMA를 이용해야지 예금 이자를 기대하는 건 바보 짓이란다.

과장이겠거니 했는데 확실한 증거가 바로 이웃에 있었다. 이웃집 태씨가 다양한 재테크 기법으로 연간 18%의 금융 소득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일 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외쳤다. “돈 빼! 나도 태씨처럼 돈 굴릴래!”

최근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이구동성으로 `외환 투자 다변화`를 언급하고 나서는 것도 이대일씨의 사례와 다르지 않다. 그간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를 자국내 금융 시장을 안정화 시키는 데 주로 사용했다. 투자는 안전 투자 대상인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굳어져왔다.

◇`정치·경제적 이유+풍부한 유동성`..투자다변화 재촉

그런데 이같은 불문율은 달러 가치가 추락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달러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 더 문제다. 미국의 대외무역적자와 재정적자는 쉽사리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로존의 경제는 건실한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달러 환율 추이

현재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2년래 최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도 달러 약세에 한몫한다. 정치적으로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는 나라들이 달러 가치를 훼손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세계4위 산유국이자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란이 최근 원유 결제 통화에서 달러를 전격적으로 제외했고, 미국과 경제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이 미 국채 매입을 중단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베네수엘라도 지난해 말 359억달러인 외환보유액 가운데에서 달러화 비중을 줄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유동성(외환보유고)이 지나치게 풍부한 것도 투자다변화를 재촉하는 요인이다.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의 뜨거운 맛을 본 뒤 `사재기`하듯 외화를 쌓아두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특히 심한 경우다.

◇주요 외환보유국 속사정도 투자다변화 요인

주요 외환보유국들도 저마다 투자다변화를 촉진해야 할 속사정이 있다. 중국은 연간 2500억달러씩 불어나는 외화를 억제해야 한다. 과도한 외화 유동성이 자칫 중국 정부의 거시경제 통제력을 훼손시키고, 물가 인상 및 위안화 절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안화가 5% 절상될 때마다 553억달러 규모의 환차손을 입게 되는 중국으로서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일본은 안정성 및 유동성으로 대표되는 운영 목표게 걸맞게 투자 대상이 미국 국채에 편중(70%)돼 있는 것이 불만이다. 세계 최대 규모(160조엔)를 자랑하는 연기금펀드의 수익성(2006.12월~2007.3월 기준 3.63%)이 어지간한 은행 이자 수준만 못한 것도 못마땅하다.

노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국가 재정이 고갈될 위기에 놓인 데다 이웃 한국과 중국이 잇따라 투자전문공사를 설립 또는 설립 추진하니 더욱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 대만도 투자 다변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국내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2003년 외환보유고의 일부를 기업에 융자하려던 방안이 좌절된 바 있어 더욱 절치부심하고 있다.

◇ 러시아 `오일머니`도 투자다변화 합세..외환보유국 `빅5` 바쁘네

러시아도 투자 다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개발도상국 가운데 홍콩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돈을 해외에 투자한 나라이자 세계 3위 외환보유국이다. 다만 러시아의 경우 다변화의 대상이 외환보유고가 아니라 석유 수출세로 조성한 석유안정화기금, 즉 `러시아판 오일머니`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이미 1000억달러 규모인 석유안정화기금의 일부(240억달러)를 해외 투자에 책정하는 법안을 마련해 의회 심의를 거친 상태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한국, 대만 등 주요 외환보유국 `빅5`가 일제히 외환보유고 다변화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투자 다변화 1단계 : 달러 비중 축소

그렇다면 외환보유고 다변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투자 다변화는 달리 말하면 각국 중앙은행들이 주요 보유 수단이었던 달러 자산을 팔아 다른 투자처에 투자하는 것이다. 당연히 달러 자산 비중을 줄이는 것이 투자 다변화의 첫 번째 단계다.
유로화와 달러화 비중의 변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달러 자산 비중은 작년 4분기 64.7%로 199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유로 비중은 25.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 2분기 기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의 달러화 보유 비중은 불과 반년 만에 5%포인트가 감소했다.

일본 다음으로 많은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도 작년 10월 현재 신규 매입 규모(210억달러)가 전년 같은 기간(782억달러)의 30%에도 못 미쳤다.

국제 채권 시장에서 유로화 표시 채권의 비중(45%)은 달러화 표시 채권(37%)를 크게 웃돌고 있고, 현금 유통량에 있어서도 작년 10월말 기준으로 유로화(약 7,996억달러)의 규모는 달러화(약 7,590억달러)를 앞섰다.

◇ 투자다변화 2단계 : 포트폴리오 다양화

투자 다변화의 두 번째 단계는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 품목을 본격적으로 늘려나가는 것이다. 일부 조사 결과는 대부분의 중앙 은행들이 2단계에 돌입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올초 런던 소재 `센트럴 뱅킹 퍼블리케이션`이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의 지원을 받아 전세계 47개 중앙은행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주식이나 상품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달러표시 채권 등 안전자산을 주로 매입하던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전통적인 투자 경향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한 85% 이상이 외환 투자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으며, 일부 투자은행의 경우 자산유동화증권(ABS)이나 모기지론 등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자산에도 투자하고 있다고 밝혀 중앙은행들의 투자 전략이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 투자다변화 3단계 : 전문 투자기관 설립

그러나 외환보유고 다변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이 최근 금융 전문가 스카웃에 열을 올리는 것만 보더라도 금융 인프라는 하루 아침에 구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의 국영 투자공사 테마섹이 각국 투자공사들의 우상으로 숭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창설이래 연평균 18%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2억2800만달러에 불과했던 자산 규모를 지난해 840억달러로 불린 테마섹의 발자취는 모든 나라의 동경이다.

이미 한국투자공사(KIC)라는 투자전문공사를 설립한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판 테마섹`을 올해 안에 출범시키기로 한 중국과, 관련 기관 창설을 모색 중인 일본과 대만이 입을 맞춘 듯 `테마섹을 모델로 한 투자기관`을 목표로 삼는 것만 봐도 테마섹의 아우라가 얼마나 강렬한 지를 알 수 있다.

중국은 외환관리기구(가칭 ‘롄후이(聯匯)공사’)를 올해 안에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적정 외환보유고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지만 롄후이 공사가 위탁받게 될 외환 규모는 대략 2000억-2500억달러 사이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4000억달러를 예상하기도 한다.

위탁 규모가 어느 정도선에서 결정되건 간에 롄후이 공사가 세계 최대의 투자전문공사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롄후이공사는 운용 자금을 에너지와 원자재,외국 기업에 장기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국무원은 쿠웨이트와 카타르 같은 나라들의 석유와 천연 가스뿐 아니라 노르웨이와 볼리비아 등의 목재 자원까지 총망라된 세계 32개국 투자 및 기업 인수합병(M&A)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는 롄후이공사의 M&A 선상에 한국의 조선과 정보통신(IT), 건설업체가 오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도 외환보유고 운영 목표를 안정성과 유동성에서 제한적 범위에서의 수익성 추구로 바꾸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베 신조 총리가 주도하는 경제자문위원회를 인용 테마섹을 모델로 한 특수 국영투자회사 설립을 모색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당국은 보도 내용을 부인했지만 달러 자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일본이 외환보유고 다변화에 무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규모에 비해 투자 효율성이 떨어져 개혁 요구가 거센 연기금 펀드를 해체해 투자공사를 세우자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만 또한 `대만판 테마섹` 설립을 검토 중이다. 조지 추 대만 중앙은행 부총재는 최근 대만 국회에서 "외환보유고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투자기관 설립을 위해 외환보유고의 일부를 따로 책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