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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창과 방패]오만과 편견 대신 대화와 인정

e뉴스팀 기자I 2021.02.04 09:08:14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영화 <오만과 편견>에 이런 대사가 있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남녀 사이에만 그럴까. 우리정치에도 기막히게 들어맞는다. 집권여당은 턱없이 오만하고, 야당은 과도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한쪽은 깔아뭉개고, 다른 한쪽은 헐뜯는데 익숙하다. 북한 원전건설 의혹과 한일 해저터널 건설 논란에서도 오만과 편견을 확인한다.

국민의힘은 북한 원전건설 의혹을 제기하며, 탈원전 정책과 연결 지어 ‘이적행위’로 규정했다. 국내 원전은 폐기하면서 북한에는 지어주려 했다는 주장이다. 국민감정을 건드리기 딱 좋은 소재다. 청와대는 선거를 앞둔 ‘북풍’이라며 발끈했다. ‘이적행위’를 거론한 김종인 위원장에게는 “명을 걸라”며 반격했다. 청와대 해명이 아니라도 ‘이적행위’ 주장은 설득력 없는 불필요한 대응이다.

한 꺼풀만 벗겨보면 이해된다. 북한은 수년째 생필품을 제외한 모든 물자 반입이 중단된 상태다. 국제사회 제재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정상 회담 당시 제재 완화부터 요구한 속셈도 이 때문이다. 설령 유엔 결의를 무시하고 강행한다 해도 미국이 용인할리 없다. 미국 첩보위성은 24시간 북한 전역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를 피해 원전을 건설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2018년은 남북 대화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던 시기다. 서로에게 도움되는 정책 변화가 기대됐다. 북핵을 폐기하는 대신 원전을 건설해 전력난을 해결해 준다면 유용한 협상 카드다. 그럴 때 실질적인 북핵 폐기도 기대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준비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이적행위’ 운운한 것은 지나친 편견이자 피해의식이다.

국민의힘이 제기한 ‘한일 해저터널 건설’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성토했다. 일본에만 이익 되는 친일 이적행위로 몰아붙였다. “우리에게 이익이 5라면 일본은 500이다. 일본에게 중국, 러시아, 유럽까지 대륙 진출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친일 DNA’를 거론했다. 사업 타당성이나 경제 효과를 따져 논쟁할 일을 친일 프레임으로 몰아간 것이다. 집권여당만 옳다는 오만한 주장이 아닌가 싶다.

한일 해저터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시도했던 사안이다. 결국 섣부른 비난으로 전직 대통령까지 부정하는 모순을 초래하게 됐다. 터널이 개통되면 일본에만 도움 된다는 주장도 어설프다. 김대중 정부 당시 일본 문화개방을 앞두고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결과는 알다시피 왜색문화가 아니라 한류가 일본을 덮었다. 왜 일본 앞에만 서면 자신감을 잃는지, 그게 문제다.

덴마크와 스웨덴도 한일 못지않게 앙숙이었다. 그러나 2001년 ‘외레순 대교’ 개통 이후 두 나라는 함께 발전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를 연결하는 7,845m 다리가 놓이면서 두 도시는 단일 생활권이 됐다. 스웨덴 노동자들은 코펜하겐에서 일자리를 잡고, 이에 힘입어 덴마크 기업들은 생산성이 높아졌다. 또 덴마크 시민들이 집값이 싼 스웨덴으로 이주하자 말뫼지역 경기가 살았다.

무엇보다 지식기반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12개 대학을 묶어 ‘외레순 대학’을 설립했다. 또 ‘외레순 사이언스 리전(OSR)’ 클러스터도 조성했다. 연구 인력과 인재들이 몰리면서 두 지역은 북유럽 최대 지식기반산업단지로 떠올랐다. 20여년이 흘러 ‘OSR’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정도다. 여기에는 의약품, 식품, 정보통신 분야 2,500여 개 기업이 들어섰다. 영국, 프랑스 역시 유로터널이 뚫리면서 적에서 동반자 관계로 전환됐다.

한일 해저터널도 이런 관점에서 따져 봐야한다. 경제적 실익과 양국 관계 개선에 도움 되는 지다. 친일논란은 엉뚱하다. 오만과 편견으로는 여당과 야당,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벽을 넘을 수 없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디아시와 엘리자베스는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물론 현실이 영화 같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정치에 필요한 게 있다면 대화와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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