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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의 대한(對韓)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일 간 다툼에 외신들은 “장기전에 돌입할 경우 양쪽 모두 치명상을 입을 것”,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13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외에 “또다른 무역전쟁이 발발하고 있다”면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일 무역갈등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양국 간 무역분쟁이 장기화되면 삼성전자의 메모리, 디스플레이 및 차세대 반도체칩 공급망이 크게 손상될 것이다. 일본 공급업체들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이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 수많은 전자제품 공급망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매체는 또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모두 경제성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는 양국의 경제 성장 측면에서 옳은 방법이 아니다”라며 “대미 의존도가 높은 화웨이 사례처럼, 한국은 일본 하이테크에 기댄 현실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큰 타격을 입겠지만 한편으론 한국에게는 대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기술 자립’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CNN, 로이터통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도 이번 수출규제가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매체들은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면 한일 간 오랜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특히 니혼게이자이는 “삼성전자와 같은 주요 기업 고객이 일본과 거래를 하지 않게 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의 위상도 줄어들 것”이라며 꼬집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4일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 사설을 통해 “대한 강경파 정치인들이 밀어붙여 이번 조치가 결정됐다”면서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되돌아오는 극약 같은 조치”라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장기전도 각오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정치권과 정부는 최근 대일 의존도가 큰 소재부품 개발사업을 대상으로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또 일본의 추가 보복에 적절한 상응 조치를 적기에 내릴 수 있도록 대비 작업에 착수했다. 일부 외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신속하게 협상하게 되면 굴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 역시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타로 오바 전 미국 국무부 한일 담당관은 블룸버그통신에 “아베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위치가 손상되지 않는 한, 또 미국과의 동맹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한국과의 갈등의) 불을 계속 지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일각에선 미국의 중재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본 역시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북한과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일본 정부 관료는 블룸버그에 “지난 3년 동안 한국에서 이란, 북한, 중국으로 향하는 배에 우려스러운 물질의 선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아베 총리가 언급했던 부적절한 사례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 이란, 북한 모두와 안보적으로 대립 관계”라며 “이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 두 곳을 중재하려는 미국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