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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안철수① "기업가란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이"

이의철 기자I 2008.08.04 13:33:09

KAIST 석좌교수로 컴백한 안철수 박사 인물탐구
"기업가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

[이데일리 이의철 논설위원] 안철수에 대한 비밀 한 가지. 알고 보니 안철수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였다. ‘엄친아’라는 용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곁들인다면, ‘엄친아’는 완벽한 남자를 의미한다. 엄마의 잔소리에 항상 등장하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존재다. 학생 때 공부는 언제나 전교 1등이고, 생활은 바른생활 사나이. 대학은 서울대가 기본이며, 취직해선 촉망받는 사원, 자기사업 하면 대박 터트리고, 부인은 커리어우먼에, 자녀가 공부까지 잘하면 대략 ‘엄친아’의 반열이다.

안철수 박사(사진)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기자는 고민했다. 이 인터뷰를 공격적으로 해야 하나, 아니면 인터뷰이(interviewee)를 최대한 배려하는 방향으로 해야 하나? 인터뷰를 밋밋하게 하자니, 기자의 까칠한 본능이 꿈틀대고, 안철수에 대한 평소 느낌대로 한다면 공격적일 이유가 없고...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기자는 받아들였다. 그는 현실의 ‘엄친아’였다. 안철수는 심지가 곧았고, 품성이 뒷받침됐으며, 컨텐트가 있었다. 심지어 겸손했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췄다.

안철수는 천재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공부가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했고, 성공한 벤처기업가였지만 “운이 좋았을 뿐, 사업하면서 굴곡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음”을 토로했다.

의사에서 벤처사업가로의 드라마틱한 변신, 그리고 사업에서의 성공. 이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유학을 떠났다가 이제 KAIST 석좌교수로 우리 앞에 선 안철수 박사를 만났다. 안철수에 대한 호칭은 많다. 공식적으로는 KAIST 석좌교수이며, 자신이 창업한 안연구소의 비상임 이사회의장이다. 어떤 호칭이 편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 박사는 “불러주는 사람이 편하면 무엇이든 좋다”고 답했다. 기자는 안철수 ‘박사’로 부르기로 했다.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부인 이름이 혹시 ‘영이’ 인가?(답을 알고 질문한 기자의 썰렁한 개그에 안 박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다. 미경이다.(그의 부인 김미경씨는 안 박사와 함께 미국 유학생활을 했다.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안 박사에 앞서 KAIST교수에 임용됐다. 9월부터 KAIST에서 법학을 강의한다) 사실 철수란 이름으로 놀림도 많이 받았는데,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내 이름이 실린다고 연락이 왔을 때 고민이 많았다. 엄청난 무게의 책임감을 느꼈는데, 어린이들에게 도덕적인 인물로 소개된 사람이 나중에 결과가 안 좋으면, 자칫 도덕적으로 살면 실패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삶의 방식은 내가 통제할 수 있지만, 성공과 실패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방학중인데 강의준비로 바쁘겠다. 어떤 과목을 맡았나.

“앙트로프리노이어 마인드셋(entrepreneur mindset). 우리말로 하면 기업가적 사고방식 쯤 되겠다. 여러 가지 다양한 창업자들의 형태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토론식 수업이기 때문에 30여명 정도가 적당한 데, 학교에서 50명을 받으라고 한다. 수강신청이 얼마나 들어올 지는 모르겠다”

-기업가 내지는 창업가란 어떤 사람인가.
 
“온갖 어려움이나 리스크를 이겨내고 환경을 극복하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흔히들 사업가나 기업인이라고 하면 카리스마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공한 기업가중에건 빌 게이츠처럼 내성적인 사람들이 오히려 많다”

-수업을 들으면 기업가 정신이 함양되는가.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장점이나 강점을 테스트해서 프로파일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의 잠재력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강의 첫 시간에 이 같은 작업을 할 것이다. 자신은 미처 몰랐는데 창업가 기질이 있는 학생에겐 그걸 깨닫게 해주고, 반대로 창업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적합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유학시절 얘기 좀 하자. 공부가 즐거웠나.
 
“공부를 즐겼다 재밌었다 등등의 이런 얘기는 말짱 거짓말이다. MBA과정을 다니면서 매일매일 후회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와튼에서 내주는 숙제는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테스트 하는 수준이다. 일주일 동안 내내 읽어가도 모자랄 정도의 리딩 과제물을 매주 내주었다. 서부에 가족들과 2년 살면서 가족 여행 한번 못가봤다. 가까운 요세미티 공원이나 나파밸리조차 가보지 못했다”

-머리 좋다는 자랑 같이 들린다. 너무 무미건조하게 살은 것 아닌가.(기자는 이 대목에서 전해들은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 안 박사 어머님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통상 미국을 방문한 어머님을 모시고 여행도 갈 법 한데, 아들 며느리 손녀 모두 책만 읽고 있더라는 에피소드다. 안 박사 어머님 친구 아들한테 들은 실화다)

“성취했을 때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참은 것이다. 과정은 나도 고통스럽지만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크면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다. 이게 내 성격이다. 어머님이 방문하셨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나는 MBA과정이지, 아내는 스탠포드 로스쿨 다니고 있었지, 딸은 그 때 팔로알토 하이스쿨 고3이었다. 어머님도 사실 책 읽는 것 좋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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