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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이자 엄마 살리려…간 하나씩 떼어준 父子

이준혁 기자I 2023.08.18 10:05:25
[이데일리 이준혁 기자] “간은 재생이 되잖아요. 아내를 그냥 저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아들과 함께 간 이식을 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이른 시일 내로 건강도, 일상도 회복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서규병(68)씨와 아내 고명자(67)씨. (사진=서규병씨 제공, 연합뉴스)
60대 남편과 그의 30대 아들이 자가면역성 간경변증을 앓고 있는 아내이자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간을 하나씩 떼어준 사연이 알려졌다. 이들 부자는 독립운동과 한국전쟁에서 조국을 지킨 국가유공자의 아들이자 손자로 알려졌다.

1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10년 전부터 병환으로 앓아누운 고명자(67)씨는 오랜 투약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더 이상의 치료가 힘든 상황이었다.

고씨의 남편 서규병(68)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을 이식하겠다 했지만, 의료진은 고령인 서씨가 수술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 이를 만류했다. 아들 서현석(39)씨 역시 절제가 가능한 정도가 일반적인 공여자 보다 모자랐다.

아내를 포기할 수 없었던 서씨는 수개월간 의료진을 설득한 끝에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수술을 위해 경찰관 퇴직 후 다니던 직장까지 떠났다. 서씨는 “저 역시 고령이라 간 이식 수술이 위험하다고 의료진이 만류했다”며 “그래도 아내를 살릴 마지막 방법은 이뿐이었다”고 전했다.

고씨가 화이트보드에 적은 글. (사진=서규병씨 제공, 연합뉴스)
수술은 무사히 마쳤지만 고씨의 회복이 늦어져 3주 동안 중환자실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유리창 밖에서 한없이 서성이던 서씨 부자는 점차 건강을 회복한 고씨가 일반병실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회복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던 고씨가 건넨 화이트보드에는 “아들, 엄마가 미안해. 잘 먹고 우리 가족 행복하게 살자” ”먼저 번에는 내가 섬망이 너무 심했대. 이제는 괜찮아” “소중한 간을 줘서 매일 한 번씩 만지고 있어” 등의 삐뚤삐뚤한 손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들과 남편의 간으로 생활하게 된 고씨는 아직도 아침마다 수술 자국을 매만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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