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한국 반도체 산업은 6000억달러(지난해 기준·약 780조원)에 이르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23.88%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과반 이상(D램 70%, 낸드 50%)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반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중에서도 그나마 위탁생산(파운드리) 부문에선 메모리반도체 제조 역량을 토대로 그나마 존재감이 있지만, 설계(팹리스)와 패키징, 생산 이후의 후공정(오사트·OSAT) 등 전 부문에서 미국, 유럽, 대만, 일본, 중국에 밀려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매출액 기준 시스템반도체 세계점유율 3.3%를 유지하는 것도 대부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에서 발생한다. 파운드리 외 부문에선 LG그룹 계열로 분류되는 LX세미콘을 빼면 연 매출액이 1조원을 넘는 기업도 없다.
정부는 이에 올 3월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의 첫 번째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 이행전략을 발표하고, 삼성전자와 함께 경기도 용인시에 300조원 이상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전 부문을 발전시키기 위한 지원 정책과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같은 추상적인 목표를 담은 현 정책의 보완 없인 실패할 우려가 있다는 게 보고서의 우려 섞인 분석이다.
보고서는 “시스템반도체 소자는 수요산업과 용도별로 매우 다양하며 개별 기업의 규모나 강점 기술분야, 비즈니스 모델도 다 다른 상황”이라며 “추상적인 목표만으론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은 무수한 개별 소자 중 일부에만 자원 투입이 편중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많은 돈을 투입해 특정 소자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우리 기업이 시장 개척을 하지 못하거나 해당 소자의 수요가 많지 않아 투입 예산 대비 실효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정된 국가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실제 비메모리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메모리 반도체와는 다른 시스템반도체의 차별점과 다양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국내 역량을 다각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며 “이를 토대로 국가적 전략을 수립하고 중장기 관점에서 자원 배분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부나 주요 기업이 시스템반도체라고 무조건 지원에 나설 게 아니라 이미 판로 확보가 된 소자에 대한 경쟁우위 확보에 자원을 투입하라는 것이다.
이어 “기존 비메모리 소자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관련한 신기술과 제품, 소자가 끊임없이 등장할 전망”이라며 “국가 및 기업 전략 수립 과정에서 이를 반영해 역동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창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