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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그린벨트가 '동네북' 인가

조철현 기자I 2015.01.25 17:31:24

주택 공급 필요할 때마다 그린벨트 해제
한번 훼손하면 복구 힘들어
'착한 규제'는 지켜 나가야

[이데일리 조철현 사회부동산부장] 정부가 바뀌어도 정책은 반복되는가. 이명박 정부도 보금자리 주택 공급을 이유로 수도권 일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크게 훼손했는데, 박근혜 정부도 그린벨트를 대거 해제할 태세다. 이번엔 중산층을 위한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서란다.

정부는 얼마 전 중산층 주거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기업형 민간 임대주택사업 육성 방안’을 내놨다. 건설사나 리츠(부동산 투자회사)와 같은 민간 기업에게 택지 공급·세제 혜택·자금(금융) 지원 등 다양한 ‘당근’을 제공해 중산층용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업이 제안하면 그린벨트까지 풀어 임대주택 용지로 공급하겠다는 발상이다. 정부는 이번 방안을 통해 국토교통부나 일선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기업에게서 ‘기업형 임대주택 공급 촉진지구’ 지정 제안을 받은 경우 선별적으로 그린벨트 해제 요청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해제 가능한 그린벨트 총량 범위 안에서 민간기업이 임대주택을 지을 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또 지구 지정을 할 때 공공기관이 지분의 3분의 1 이상 출자해야 하는 ‘출자의무 비율’을 오는 2017년까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린벨트에서의 개발이익을 순수 민간기업이 독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촉진지구에서 사업시행자가 토지 면적의 절반만 확보해도 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용도지역이 주거지역이라도 임대주택을 제외한 용지는 판매·업무 등 복합시설물 건립도 허용된다.

일반 사업장에도 적잖은 혜택이 주어진다. 촉진지구가 아닌 그린벨트 지역에 면적의 절반 이상을 기업형 임대주택 형태로 지을 경우 2017년까지 공공지분을 착공 후 팔 수 있도록 했다. 과히 파격적인 혜택이다.

특히 정부는 기존 시가지와 인접한 그린벨트 지역에 임대주택을 건설할 때는 최소 개발 면적 기준(20만㎡)도 없애기로 했다. 그린벨트 해제 이후 난개발에 따른 자연경관 훼손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악용 소지도 없지 않다. 민간 자본이 그린벨트 지역을 기업형 임대주택용지로 분양받은 뒤 임대 수요 부족을 이유로 분양주택으로 전환을 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 민간 기업에 제공하면서까지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만큼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민간의 도움이 절실한데, 민간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값싼 택지 공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그린벨트는 ‘가용 택지’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자연 환경 보존을 위해 남겨둔 안전벨트다.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해 지키고 회복해야 할 공간이다. 현 세대를 위해서도 그리고 미래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도 보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 그린벨트를 규제로만 여기고 풀어서 개발하려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어느 때부터인가 주택 공급이 필요할 때마다 그린벨트는 어김없이 가용 택지로 동원돼 왔다. 그린벨트가 마치 ‘동네북’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중산층·서민을 위해 값싼 주택을 짓는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지켜온 소중한 나라의 자산을 마구 헐어 선심용으로 쓰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정책이라면 누가 못하겠는가. 그린벨트는 한 번 훼손하면 복구하기가 힘들다. 전·월세시장 안정을 빌미로, 그것도 기업형 민간 임대사업자에게 적잖은 특혜를 주면서 ‘착한 규제’를 마구잡이로 푸는 것은 최대한 자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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