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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만 명예 졸업하는 '신흥 5·27 민주화 운동' 주역

유현욱 기자I 2017.01.03 09:00:00

신흥고 학생들, 군부독재 항거하다 무더기 중징계
이성호(54)씨, 자퇴 후 연세대 진학…교육사업가의 길로
내년 2월 까마득한 후배들과 졸업식 한 자리에

1980년 3학년 재학 당시 찍은 이성호(54)씨의 졸업 사진.자퇴로 졸업 앨범에는 실리지 못했다. (사진=이성호씨 제공)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까까머리 10대 소년은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중년이 되었다. 고교 시절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학교 측의 부당한 징계에 맞서 자퇴를 선택했던 18세 열혈청년은 36년 만에 모교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는다.

이성호씨의 최근 모습. 36년 세월이 흘렀지만 이씨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다. (사진=이성호씨 제공)
1일 전주 신흥고는 정유년 새해 2월 9일 오전 전북 전주 완산구 본교 대강당에서 열리는 졸업식에서 이성호(54)씨에게 명예 졸업장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개교 117주년 66회 졸업생인 까마득한 후배 340명과 졸업 동기가 되는 셈이다.

소회를 묻자 “쑥스럽다”며 말문을 뗀 뒤 “후배들도 역사를 기억하며 불의에 맞설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1978년 입학한 이씨는 3학년 때인 1980년 봄부터 남몰래 군부독재에 맞선 교내 반정부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광주민주화항쟁 기간 벌어진 군·경의 무력 진압에 시민들이 쓰러지고 있다는 비보(悲報)를 접한 이씨는 총궐기를 계획하고 뜻이 맞는 학생 1500명을 규합했다.

하지만 거사 당일인 5월 27일 이들이 교문을 나서기도 전 군이 학교를 포위했고 교사들도 안전을 이유로 막아섰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교내 강당에 모여 시국토론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신흥 5·27 민주화 운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1주일간 휴교령이 내려졌다. 또 시위를 주도한 27명의 학생은 정학부터 퇴학에 이르기까지 중징계를 받았다.

이 일로 4명은 제때 졸업을 하지 못했다. 이우봉·이강희(54)씨는 전주 시내를 돌며 유인물을 돌리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붙잡혀 옥고를 치르다 퇴학당했다. 이성호씨는 부당한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교문을 박차고 나선 뒤 학교로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30년이 흘러 지난 2010년 학교 측이 징계 무효를 선언, 이우봉·이강희씨는 이듬해 명예 졸업장을 받았지만 이성호씨의 사연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동기들이 백방으로 뛰어 관련 서류를 준비해 학교 측에 신청했고 총동문회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교무회의에서 최근 명예 졸업장을 수여키로 했다. 임희종 교감은 “동시대를 산 이에게는 정의 구현이, 이 시대를 살아갈 예비 졸업생들에게는 생생한 역사 교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정고시로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한 이씨는 이제 어엿한 교육 사업가가 됐다. 이씨의 명예 졸업식에는 ‘신흥 5·27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이 대거 자리를 함께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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