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스토킹 증거 찾던 경찰, 열흘 뒤 살해당한 누나… 유족의 눈물

송혜수 기자I 2021.11.25 09:44:11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누나는 살고자 발버둥쳤습니다. 경찰은 증거가 없으면 도와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스토킹 살해범 김병찬(35)의 범행에 숨진 피해 여성 남동생이 한 말이다. 남동생은 김병찬에 대한 엄벌과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신변보호 여성 살인’ 피의자 86년생 김병찬. (사진=뉴시스, 경찰청 제공)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계획적이고 잔인한 스토킹 살인범에게 살해당한 고인과 유족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최근 벌어진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의 남동생이라고 밝힌 A씨는 “(누나는) 허술한 피해자 보호 체계와 경찰의 무관심 속에 죽어갔다”라며 경찰의 무책임한 대응을 지적했다.

그는 “누나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한 치밀하고 잔인한 살인마에게 희롱당하다가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꽃다운 나이에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라며 “괴롭힘을 당하는 과정에서 누나는 살기 위해 경찰에게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고, 나라가 제공한 피해자 보호 제도를 굳게 신뢰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A씨는 “생전 누나는 경찰로부터 스마트워치를 받고 걱정해주는 친구들에게 ‘나에게는 만능시계가 있다!’ ‘경찰청이 바로 코앞에 있어서 신이 도우신 것 같다’라고 얘기했다”라며 “그러나 허울뿐인 피해자 보호 제도는 누나를 살인범으로부터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고, 누나는 차가운 복도에서 고통 속에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에 따르면 피해자는 지난 7일 김병찬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은 뒤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한 뒤 다음 날까지 임시보호소에서 머물렀고, 9일부터 14일까지 지인의 집에서 지냈다. 김병찬은 피해자가 오피스텔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자 9일 피해자의 직장으로 찾아갔다.

A씨가 공개한 112신고 당시 녹취에 따르면 피해자는 112에 전화를 걸어 경찰에 “임시보호소에 있는 ○○○인데 가해자가 찾아왔다”라고 신고했다. 경찰은 “같이 있느냐”라고 물었고 피해자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이에 경찰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라고 물었고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증거가 없으면 도와드릴 수 없다”라며 “같이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어야 도와드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이에 대해 A씨는 기가 막힌다고 했다. 그는 “위협을 가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피해자가 동영상을 찍을 수 있을까. 셀카라도 한 번 찍자고 해야 할까”라며 “이게 대한민국 피해자 보호 체계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A씨는 법원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 정보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의 잠정 조치가 취해진 이후에도 김병찬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병찬과 통화 이후 도리어 피해자에게 “(김병찬이) 번호를 지우면서 잘못 눌렀다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되물었다고.

경찰이 안일하게 대응하는 사이 피해자는 결국 지난 19일 스토킹을 피해 이사 갈 곳으로 알아보려 휴가를 내고 외출했다가 김병찬에게 살해당했다.

A씨는 “(누나는) 끔찍하게 공격당하는 와중에 살기 위해 스마트워치를 애타게 눌렀으나, 스마트워치는 엉뚱한 곳을 알려줬다”라며 “신변보호자에게 제공되는 스마트워치를 누른 최초의 시간인 오전 11시 29분에 경찰이 출동해 현장에 제대로 도착했다면, 누나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신변 보호 요청을 한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보호 인력을 배정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경찰의 부실 대응으로 구해야 할 국민을 지키지 못한 책임자를 규명해 처벌하고, 책임자는 고인과 유족 앞에서 직접 진심 어린 사과를 약속해달라”라며 “또 유사한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피해자 보호 체계 개선을 위한 확실한 일정을 빠른 시일 내 공표해달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병찬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A씨는 “가족들은 계속해서 김병찬이 ‘전 남자친구’로 표현되는 것이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라며 “만에 하나라도 이 살인범이 ‘사랑’을 들먹이며 형을 낮추려고 한다면 강하게 항의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

서울경찰청은 이날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김병찬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피해자는 지난 11개월 동안 김병찬에게 스토킹과 위협을 당해 총 6차례에 걸쳐 경찰에 이를 신고했지만, 지난 19일 신변 보호를 받던 중 김병찬에게 살해당했다.

사건 당일 피해자는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를 통해 두 차례 경찰에 긴급상황임을 알렸다. 그러나 경찰은 12분 뒤 현장에 도착했고, 김병찬은 살인을 저지르고 범행 장소를 떠났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