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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의 미국in]미국이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이유

이준기 기자I 2020.05.17 12:00:00

"미국은 특별하다"며 한국 등 아시아 방역 성공사례 외면
검사 확대·마스크 의무화 등 뒷북 대응에 비난 봇물
'코로나 사태 장기전…백신 개발 등 美 최후에 웃을수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미국에선 ‘미국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우월하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이 심리는 다른 국가에서 성공한 정책이 미국에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곤 한다.”

미국 럿거스대학의 정치학자 대니얼 켈러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미국의 행태를 미국이 다른 나라와는 다른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뜻을 담은 이른바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가 낳은 모습으로 해석했다. 최근 미 시사주간지 애틀랜틱과 진행한 인터뷰에서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은 다른 나라의 경험을 교훈으로 얻으려 하기보단, 일단 저항부터 하다보니,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를 키웠다는 게 켈러먼 교수의 진단이다.

◇韓 등 아시아發 교훈 외면한 美

미국은 코로나19 국면 초기 검사·확진, 조사·추적, 격리·치료 등 한국형 방역모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스크 대란을 아시아 변방 국가에서 벌어진 한심한 사건 정도로 치부했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도 팽배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화장지 대란 등 사재기 현상으로 미국은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미국은 뒤늦게 마스크 착용 의무화·진단키트 수입 및 개발·인공호흡기 생산 등에 적극 나섰지만 이미 바이러스는 뉴욕을 중심으로 미 전역에 퍼진 이후였다.

미 스워스모어대의 도미닉 티어니 정치학교수가 “미국은 다른 국가의 실수는 피하고, 모범 사례는 베낄 수 있는 값진 기회가 있었지만, 날렸다”고 했다.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예일대 교수는 “중국이 올 1월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격리하기 시작했을 때 코로나19에 대비했어야 했다”며 “우리는 6주를 잃었다”고 했다.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 145만명, 사망자 수는 9만명에 육박한다. 모두 전 세계 1위다. 전염병학자 브리타 L. 주얼과 니콜라스 P. 주얼은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미국의 방역대책이 3월초로 2주 앞당겨 취해졌다면 사망자중 60%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뒤늦은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가장 아쉬운 대목 중 하나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이념적 저항감 속에 마스크는 아시아에서나 쓰는 것이라는 편견이 심했다. 일종의 ‘자존심’ 문제로 본 것이다.

뉴질랜드 오타고대학의 닉 윌슨 공중보건학과 교수는 “뉴질랜드 역시 여전히 다른 나라들로부터 충분히 빨리 배우지 못했다”며 “(방역 선진국인) 한국·대만·싱가포르 등은 모두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아시아로부터 배우는 것에 대한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가 “전후 미국 리더십의 산물인 한국이 코로나19 사태에서 최우수 대응을 한 대표적 사례가 된 것은 아이러니”라고 쓴 것은 아시아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진=AFP
◇“미국은 거인”…뛰기 시작한 美

미국이 미적대는 사이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은 한국의 방역모델을 벤치마킹해 코로나19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이 코로나19 국면에서 패배자로 남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으로 흘러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미국의 실패’로 결론 짓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티머시 가튼 애시 옥스퍼드대학 유럽역사학과 교수는 NYT에 “마지막에 어느 국가가 더 튼튼한지를 증명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실제로 미 정가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공화당 중진 밋 롬니 상원의원이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한국 등 방역에 성공한 나라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촉구한 게 대표적이다. 미 예외주의의 본산인 미 의회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례적이다.

켈러먼 교수는 “최근 들어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코로나19 감염률 및 사망률 변화 등을 볼 때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는 등 여타 국가에서 수확한 교훈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고 했다.

아울러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있어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점도 최후에 웃는 자가 미국이 될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무너진 글로벌 리더십 또한 미국이 가장 앞서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성공할 경우 언제든 회복할 수 있다.

워싱턴 내 대표적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벤저민 하다드 연구원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장기적 손상을 받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건 현재로선 무리가 있다”며 “향후 중국과의 경쟁구도가 부각되면서 외교정책에서 국가적 단합을 이뤄낼 수 있다”고 했다.

스탠퍼드대학의 제이슨 왕 예방의료연구센터 교수는 애틀랜틱에 “미국은 ‘많은 능력’을 갖춘 (느릿느릿한) 거인”이라며 “이 거인이 한번 뛰기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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