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방문 앞둔 김동연, 유감 표명..왜?(종합)

최훈길 기자I 2018.08.04 12:05:46

LG, 현대차, SK 이어 6일 삼성 방문
7월 文-이재용 만남 뒤 관계복원 시동
"기업 팔 비틀어", "삼성에 구걸" 논란
삼성의 파격적 투자계획 발표 없던 일로
"경제장관 바꿔야" VS "부총리 더 뛰어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입장문을 통해 “삼성전자(005930) 방문 계획과 관련해서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오는 6일 방문을 앞두고 유감 입장을 밝힌 건 이례적인 일이다. 수개월 준비했던 만남이 꼬인 상황을 두고선 해석이 분분하다. 방문을 둘러싼 오해가 많았다는 게 기재부 입장이다. 경제컨트롤타워로서 중심을 잡고 제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文-이재용 만남, ‘관계복원 시동’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 계획은 수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6월 취임 이후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을 위한 기업 현장 간담회’를 잇따라 개최해왔다. 김 부총리의 재계 총수급 면담은 작년 12월 LG그룹 구본준 부회장, 올해 1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3월 최태원 SK그룹 회장까지 이어져 왔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이 ‘삼성 방문 계획’을 물었지만, 김 부총리의 명확한 답변은 없었다.

삼성과의 만남이 가시화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김 부총리는 5월2일 출입기자단과의 월례 간담회에서 삼성 측과 만날 계획이 있는지 질문을 받자 “대기업 소통 관련해 4대 재벌뿐 아니라 어떤 재벌과도 만나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혁신성장과 관련해 기업들의 기를 살리고 혁신성장에 동참할 수 있다면, 어떤 사이즈의 기업이 되든지 만나서 힘을 합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 부총리가 5월16일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기재부는 5월7일 입장문을 통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고 방문 일정은 연기됐다. 당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김 부총리가 당시 삼성을 방문하는 게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제 지표는 잇따라 고꾸라졌다. 6월15일 발표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15~29세) 실업률이 10.5%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 1년 만에 받은 ‘고용 성적표’였다. 같은 달 26일 청와대 홍장표 경제수석과 반장식 일자리수석은 경질됐다. 신임 경제수석에는 기재부 출신 윤종원 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가 임명됐다.

7월부터는 대기업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났다. 문 대통령은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이 부회장은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재계와 관계복원에 나섰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후 김 부총리는 7월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8월 초 삼성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과의 만남 이후 후속조치의 일환이었다. 김 부총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서로 간 시간을 조율해서 경제단체장들도 만날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투자 계획을 놓고 장밋빛 전망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부탁한 만큼 100조원대 파격적인 투자 계획이 나올 것이란 보도가 쏟아졌다. 삼성이 LG(19조원 투자-1만명 고용), 현대차(23조원-4만5000명), SK(80조원-2만8000명), 신세계(9조원-1만명)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기재부는 김 부총리가 이들 4개 기업을 방문한 뒤 해당 기업의 투자·고용 계획을 공개해 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월9일 오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사진=연합뉴스]
◇“기업 팔 비튼 정부” Vs “삼성에 구걸”

하지만 이번 삼성과의 만남에선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보수 성향 언론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기업 팔을 비틀어 투자·채용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진보 성향 언론에서는 재벌개혁 갈 길이 먼데 문재인 정부가 노골적인 ‘삼성 구애’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진보성향 학자인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 교수는 지난 1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재용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연루자”라며 “(이 회장과의 만남은 정부가) ‘재벌개혁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겨레는 3일 오전 보도한 기사에서 “청와대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삼성 방문과 관련해, 정부가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논란이 이렇게 증폭되자 기재부는 3일 낮 언론을 통해 “6일 삼성의 투자·고용 계획이 발표되지 않을 것”이라며 “김 부총리가 이 부회장과 만날지는 확정이 안 됐다”고 전했다. ‘소문난 잔치’로 알려졌지만 빅뉴스가 없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어 김 부총리는 3일 저녁 ‘한겨레 <청와대, “김동연에 삼성에 투자·고용 구걸 말라”제동> 기사 관련 부총리 입장문’을 통해 “대기업은 4번 만났지만 투자나 고용 계획에 대해 간섭한 적이 없다. 정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에 의지해 투자나 고용을 늘리려는 의도도, 계획도 전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발표했다. 김 부총리가 작년 6월 취임 이후 특정 언론사 기사에 입장문을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부총리는 “삼성전자 방문 계획과 관련해서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유감”이라며 “보도내용 중 사실관계나 정부 방침과 다른 점도 있지만, 특히 기사에서 인용된 일부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삼성 방문을 앞두고 청와대 일각에서 ‘구걸’이라는 의견을 언론에 흘리자 불쾌함을 내비친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4일 통화에서 ‘보도내용 중 사실관계나 정부 방침과 다른 점’에 대해 “‘기재부가 김 부총리 방문 당일 삼성의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한다는 애초 계획을 바꿔 하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애초부터 기재부가 그런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기업이 투자·고용 계획의 발표 여부를 자체 판단하기로 한 게 정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적절치 않은 표현’에 대해선 “부총리가 삼성에 투자·고용을 구걸한다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는 일정인데 곡해하는 얘기들이 계속 나와서 입장문을 낸 것”이라며 “6일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부총리의 기업 방문일정도 계속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6일 이재용 부회장과 만날 예정이다. 경제부총리가 삼성전자 공장을 찾는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이 국내 공개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지난 2월 집행유예 석방 이후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을 맡았던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경제가 어려운 데다 보수·진보 양쪽에서 때리고 있어 국정운영이 힘든 상황”이라며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김 부총리가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 협조를 구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며 “기업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의사결정을 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경제정책 당국, 부총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전성인 교수는 “경제부처 장관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이 난국을 풀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올해 5월 청년실업률이 5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년 5월 기준. 단위=%. [출처=통계청,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설비투자가 6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월 대비, 단위=%. [출처=통계청]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8일 발표한 ‘하반기 이후 경제여건 및 정책방향’에서 성장률, 설비투자, 건설투자, 수출 모두 갈수록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전년동기비, 단위=%.[출처=기획재정부,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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