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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불안`…카프카적인 오늘과 내일

김미경 기자I 2024.06.05 09:17:05

프란츠 카프카 서거 100주기
대표작 `변신`, 부조리한 삶 통찰
하루키 등 유명작가에 영향
출판계 작품 넘어 작가 삶 조명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 거야?” 한동안 소셜미디어(SNS)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질문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에게 물은 뒤 이들의 반응을 온라인에 공유하는 일종의 놀이다. 사실 이 질문의 원조는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년)다. 자고 일어났더니 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그린 단편소설 ‘변신’은 그의 대표작이다.

소설의 강렬한 첫 문장은 여전히 회자된다.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울과 불안, 허무와 고독의 금언들은 도발적이면서도 ‘나’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적이다.

카프카스러운 세계…출판계 카프카 기념 중

올해 카프카 서거 100주기를 맞아 출판계에서는 카프카 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나온 관련 서적만 해도 10여 권에 달한다.

카프카는 1924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결핵. 당시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중산층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카프카의 삶은 배척과 소외라는 큰 틀로 묶을 수 있다.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 밤에는 숨은 작가로 산 그는 부조리한 삶에 대한 통찰을 글로 남겼다. 극도로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카프카적·카프카스러운·카프카다운(kafkaesque·카프카에스크)’이란 형용사가 영어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다.

3일 출간한 ‘카프카, 카프카’(나남출판)는 한국의 작가와 평론가들이 카프카를 기리며 쓴 글을 묶었다. 김혜순·최승호 시인이 자신의 시에서 카프카스러운 시 두 편을 꼽았다. 김행숙 시인과 이기호 소설가는 카프카 풍의 짧은 소설(각각 ‘카프카의 유령’ ‘심사’)을 썼다. 신형철 평론가는 ‘오직 나만을 위한 불가능’이라는 카프카론을 실었다.

프란츠 카프카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우연한 불행’(위즈덤하우스)은 카프카의 단편과 초단편 55편 모음집이다. 카프카가 처음 출간한 소설집 ‘관찰’의 수록작을 비롯해 작가가 사후에 모두 불태워주기를 바랐던 유고 더미에서 발견된 단편과 초단편 등을 담아 카프카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독일 피셔출판사가 기획한 책으로 이 출판사 편집자 제바스티안 구골츠는 “카프카가 쓴 가장 짧은 글을 모은 이 책 비유담들에는 우리가 ‘카프카답다’고 부를 만큼 그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농축돼 있다”고 했다.

‘프란츠 카프카: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소전서가)은 ‘인간 카프카’를 탐구한 책이다. 프라하, 유대인, 가족, 친구, 연인 등 39개 장면으로 압축해 카프카의 삶을 돌아본다. 신문에 실린 부고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은 적고 그림이 많아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는 카프카 안내서다.

이밖에 단편·작품·편지 등을 모은 ‘디 에센셜: 프란츠 카프카’(민음사)와 카프카의 잠언과 일기를 실은 ‘너와 세상 사이의 싸움에서’(민음사)도 100주기에 맞춰 출간됐다.

‘우연한 불행’의 역자 박종대 번역가는 “카프카는 지상에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물면서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에 처절히 맞서 싸우고, 문학 속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며 “오늘날까지도 수수께끼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카프카의 작품들은 20세기 현대 문학이 인류에게 남긴 소중한 유산”이라고 썼다.

‘작가들의 작가’ 카프카

카프카는 작가들의 작가다.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 등 수많은 후대 작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명 장편은 제목부터 ‘해변의 카프카’다. 국내 대표 문예지 ‘악스트’(AXT)의 제목은 카프카의 말에서 따왔다. 독일어로 ‘도끼’를 뜻한다. 시인 허수경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잠 속에서 깨어나면/ 투명한 벌레 한 마리가 될 날씨’(시 ‘카프카 날씨1’)라고 썼다.

카프카가 세상을 떠나자, 체코 신문 ‘나로드니 리스트’에 이런 부고가 실렸다. ‘그의 작품은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몰이해, 죄없이 저지른 잘못 등으로 인해 야기된 끔찍한 전율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고, 그래서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믿는 곳에서조차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한 양심을 가진 예술가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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