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희망을 말한다]진대제 “정부, 기업가는 길 돌부리만 치워주면 돼…역할 최대한 단순해야”

박철근 기자I 2019.01.08 08:14:25

근로시간 단축 강제 등 지나친 시장개입 지양해야…신산업 초기수요창출 역할
반도체보다 자동차가 더 걱정…현대차 수소차 개발에 정부 전폭 지원 필요
“위기 극복 위해 발상의 전환 필요..일자리 창출보다 감소 줄이는 노력해야”

[이데일리 대담=김상헌 산업에디터, 정리=박철근 기자] “기업은 자신의 자본을 투자해 사업을 하기 때문에 매순간 사활을 겁니다. 정부는 다른 역할 필요 없어요. 기업이 가는 길에 돌부리만 치워주면 됩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이하 스카이레이크) 회장은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스카이레이크 본사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기업경영활동 및 경제부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회장은 “기업은 기회만 있으면 그것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일을 한다”며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만 조성하고 새로운 산업의 초기수요창출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드론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드론이 필요한 국방부나 소방청, 산림청 등과 같은 정부부처가 우선적으로 드론을 구매해 초기시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리다.

진 회장은 지난해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근로시간단축과 최저임금 등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초기 때 TV토론에 패널로 참가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반대했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임금을 지급할 주체들의 지불능력을 고려해야한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전했다.

진 회장은 “더 큰 문제는 바로 근로시간 단축이다”며 “지금은 가격경쟁력보다는 엔지니어와 기술경쟁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기다. 그러려면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정부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취약계층을 도와주는 일을 해야 한다”며 “일·생활균형(워라밸)은 개인이 결정하는 일이다. 국민의 워라밸까지 국가가 나서서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진 회장은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산업계에서 규제혁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데 규제는 과거에 필요하기 때문에 만든 것이다. 규제 탓만 하는 것은 결국 ‘조상 때문에 못살겠다’는 주장과 같다”며 “규제혁신만 주장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그는 “중국을 경쟁국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세계 최대 시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중국에서의 사업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며 “사업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사업이 아니라 사업을 세분화 해 1000~2000명 등 소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진 회장과의 일문일답.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4일 서울 서초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본사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정부는 기업경영의 걸림돌을 해소하고 초기수요창출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신태현 기자)
- 제조업을 비롯한 한국 산업이 위기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우리나라의 영향이 크다. 반도체, 기계, 조선 등 일본 주력산업의 패권을 우리가 가져왔다. 그 현상이 이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는 등 제조업에 대한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투자를 발표했다. 스카이레이크가 경영하던 제조업체 중 한 곳도 수 년전에 중국기업과의 경쟁에서 고전하다가 결국 파산했다. 중국과의 가격경쟁력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또 다른 원인은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전(全) 산업의 IT(정보기술)화에서 실기(失期)한 탓도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라는 개념으로 모든 산업에 IT를 접목해 육성하겠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당시 우왕좌왕하지 않고 지속 추진했다면 현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조언해달라.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것을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기업인들을 응원해야 한다. 지금 정부를 보면 기업을 칭찬하고 열심히 해달라는 당부도 안하고 있다. 현 정부를 친기업 정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지금 투자를 하지 않으면 회사가 퇴보하는 것을 알지만 투자의욕을 못느끼고 있다. 주변의 중소기업들을 봐도 사업을 접겠다고 하는 사람이 즐비하다.

사가 쪼그라드는 걸 아는데도 투자할 의욕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외국에 공장만들 생각하지 국내에 누가 투자하려 들겠느냐.

주변 중기를 보면 직원을 점차 줄이면서 결국 사업 접겠다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본인 먹고 살 준비는 됐다면서 자식한테 상속하려고 하는 사람들 점차 사라진다. 투자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위기의식을 갖고 국가를 개조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현 정부는 단기업적주의다.

기업은 정부보다 훨씬 먼 미래를 내다보고 사업전략을 수립하기 때문에 언제나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다. 반면 정부는 5년동안 세금 거두고 잘 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

회사를 일정 반열에 올리려면 20년 걸리지만 망하는 데는 2~3년이면 충분하다. 대기업이야 버틸 맷집이 있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더 힘들다.

기업은 어려워지는 순간 바로 죽는다고 보면 된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지면 재산 모두 담보를 잡히거나 주변에서 돈을 빌려서라도 버텨보려 한다. 하지만 다 실패하면 분식회계로 감옥을 가던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기업인들의 위기의식이 정부나 공무원들에게는 없다. 이 때문에 경제정책을 두고 기업과 정부의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최저임금이 올라도 대기업은 부담이 없지 않느냐’라고 한다면 일정 부분은 맞다. 하지만 기업인은 지금의 최저임금 인상이 5년 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를 고민한다.

나도 기업과 정부에서 모두 일을 해보니 시각차이가 정말 크다는 것을 느꼈다.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기업인 출신이 정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정부가 기업인의 입장을 더 이해할 수 있다.

- 주력산업인 반도체가 고점을 찍었다는 지적이 많다.

△경기변동으로 이익이 감소할 수는 있겠지만 반도체는 걱정이 없다. 아직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기술장벽이 높아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

진짜 큰 문제는 자동차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자동차산업에서 현대차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금 현대차가 수소차를 열심히 개발 중인데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현대차의 수소차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현대차를 지원한다는 개념이 아닌 미래자동차 기술인 수소차 개발을 지원한다는 생각으로 수소차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에 정부노력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가 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 주도로 초고속인터넷망을 전국에 구축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정부가 자동차를 비롯해 제조업 부흥에 노력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지속적으로 던지면 관련산업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

- 정부 국정과제 1순위가 일자리다. 일자리정책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모든 산업에 IT를 접목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인건비 상승과 투자의욕저하로 해외로 눈을 돌린다. 이같은 이유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일자리 창출보다 기존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탈모가 진행중인 환자가 있다고 예를 들면 머리카락을 덜 빠지게 하는 것이 머리가 새로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만나서도 자꾸 재정을 투입해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 창출을 하는 것보다는 기존 주력 제조업인 조선·기계·정밀화학·자동차 등 소위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업종에서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회장은…

△1952년 경남 의령 출생 △경기고 △서울대 △서울대 전자공학 석사 △미 스탠포드대학원 전자공학 박사 △IBM 왓슨연구소 연구원 △삼성전자 미국법인 수석연구원 △삼성전자 중앙연구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디지털미디어총괄) △정보통신부 장관 △한국블록체인협회 회장 △서울시혁신성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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