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결정적장면]산재 유족 특별채용, 대법관들의 '각양각색' 시선은?

남궁민관 기자I 2020.06.20 11:41:57

현대·기아차 23년 근무하다 백혈병 사망
딸 특별채용 신청했지만 거절…대법 전합 공개변론
"산재 유족, 사회적 신분 아냐…비난 온당치 않아"
"산재 예방 소홀해질수도", "구직자 고려해야" 지적도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1985년 기아차에 입사한 A씨는 23년간 벤젠에 노출된 상태로 금형세척 업무를 맡다가, 2008년 현대차 남양연구소로 전출한 지 6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0년 사망했다.

가장을 잃은 슬픔에 더해, 당장 생계에도 큰 위기에 직면한 A씨 유족들은 현대·기아차 단체협약 97조에 주목했다.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했거나 6급 이상 장애로 퇴직할 경우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 중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는 조항에 따라 A씨의 딸은 특별채용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이를 거절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 17일 공개변론이 진행된 이번 사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인가, 아니며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채용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인가로 쟁점이 모아졌다.

원고와 피고 법률대리인과 함께 관련 전문가가 참고인으로 참석하는 공개변론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도출한다는 그 취지에 따라 대법관들 역시 이날 공개변론에서 가감 없이 본인들의 의견을 표출했다.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것에 대한 대법관들의 솔직한 시선, 이번 주 서초동 결정적 장면이다.

김상환 대법관.(사진=대법원 유튜브 캡처)


◇“특채 매년 2인 미만…얼마나 공정성 침해하나”

먼저 김상환 대법관은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고 있는 만큼, 사건 전반에 대해 제기 가능한 일반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 대법관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에 대한 단체협상은 규정된지 상당한 세월이 지났고 그 동안 회사는 이를 준수해왔는데 이번에 무효를 주장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사정이 있었나”라고 물었다.

이에 현대차 측은 “25년 전 이번 특별채용 조항이 단체협상에서 체결된 이후 현대·기아차 모두 이를 준수해왔지만, 세월이 흐르며 대기업의 일자리 문제가 공적 관심사가 되면서 여론의 비판이 고조됐다”며 “결정적으로 2013년 울산지법에서 현대차의 특별채용 거절과 관련 고용세습 조항은 무효라 판결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 대법관은 “사기업의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전제로 채용 공정성을 주장하는 것에 공감은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공개채용 규모는 그간 매우 적거나 안 한 해도 있는 반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수는 연 평균 2인 미만인 것으로 보이고 산재를 줄이려는 기업 정책의 영향으로 이같은 특별채용 역시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렇다면 단체협약 조항의 유·무효 판단에 있어 실질적으로 고려해야 할 공정성 침해 정도는 이론과 달리 매우 적다고 보인다”고 입장을 내비췄다.

김선수 대법관.(사진=대법원 유튜브 캡처)


◇“산재 당한 게 사회적 신분 아냐…대기업 자녀나 특혜지”

김선수 대법관은 직접적으로 산재 유족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김 대법관은 “특별채용에 대해 양질의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제도이고 사회적 신븐을 이용한 특혜라고 공격하고 있는데,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의 직계 자녀란 지위가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 있냐”라고 물은 뒤 “오히려 대기업 오너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사정 때문에 부와 경영을 세습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적 특혜라고 공격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이후 두 번째 질의응답 기회를 얻은 김 대법관은 산재 유족들의 심적 고통에 강한 공감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산재 유족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무엇을 잘못 했길래 양질 일자리의 대물림이라느니,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적 특혜라느니 이런 비난을 왜 받아야 하는가”라며 “사랑하는 아버지가 가장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회사의 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고 이에 20년 이상 이어져 온 단체협상에 따라 특별채용을 요구했는데, 회사가 이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이 온당한가”라고 되물었다.

민유숙 대법관.(사진=대법원 유튜브 캡처)


◇“산재 예방 소홀해질 수도…젊은 근로자 차별도 문제”

반면 산재 유족을 특별채용함으로써 오히려 회사가 산재 예방 조치에 소홀해질 수 있고,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다.

민유숙 대법관은 “산재 유족 측은 특별채용이라는 혜택을 받으면서 회사에 추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합의하거나 형사 사건화됐을 때 처벌 불원서 등을 제출해 처벌을 낮춰주는 등 상호 간 이해관계의 대등성을 이룬다고 설명했다”며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결국 회사는 산재가 발생할 경우 엄정하게 처벌을 받고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조치를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 유족을 채용하는 대신 산재 방지에 소홀해져 장래에 누군가가 다시 산재를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을 외면하게 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산재 유족, 정확히 직계가족 1인을 특별채용토록 하는 조항이 최근 달라지고 있는 가족제도 하에 또 다른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했다.

민 대법관은 “전통적 가족제도 아래 부 또는 모에 해당하는 이가 사망했다면 취업연령인 자녀가 젊은 시기 특별채용돼 정년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것에 비해, 혼인하지 않은 젊은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그 직계비속(자녀)이 없어 직계존속(부모)이 고용을 보장받아야 하는데 대게 연령이 정년에 가까웠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어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전통적 가족제도와 다른 형태로 사는 이들은 현격하게 떨어진 보장을 받게 돼 차별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기택 대법관.(사진=대법원 유튜브 캡처)


◇“청년 구직자들의 의견 듣지 못해 아쉽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이해관계자인 청년 구직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데 안타까움을 드러낸 대법관도 있었다.

이기택 대법관은 “구직을 원하는 많은 구직자들 역시 이 사안 결론에 따라 영향을 받는 주체로, 사실 이 법정에서도 이들을 대표한 누군가가 나와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결론을 내는 데 의견이 참작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법관은 “예를 들어 공공임대주택에 관해 입주권을 받은 임차인이 도중에 자격을 잃어 임대인이 나가달라고 재판을 해 임차인을 보호하는 식으로 결론이 나면 따뜻한 판결이라고, 나가라고 하면 야박한 판결이라고들 할 수 있다”면서 “임차인이 나가지 않으면 정당하게 그 주택에 들어와 살 수 있는 다른 무주택 서민에게 돌아갈 권리를 부당하게 무자격자가 차지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법관은 “이 사건 역시 특별채용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회사가 아닌 다른 구직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간접적으로 채용의 공정성에 힘을 실었다.

다만 이 대법관은 “그동안 산재 유족들에게 제공해왔던 경제적 보상 중 하나를 어느 날 갑자기 빼겠다고 나선 것인데, 만약 이 사건에서 회사가 승소한다면 이후 특별채용에 대응하는 종전에 없던 새로운 경제적 이익을 근로자 측에 제공할 용의는 갖고 있나”라고 물었고 현대·기아차 측은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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