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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빨래랑 청소 다했으면 커피좀 끓여줄래?"(VOD)

조선일보 기자I 2007.06.29 09:35:00

가정으로 들어오는 서비스 로봇
스탠퍼드大 ''스테어'' · MIT ''코그'' 등 가정부 로봇 연구 확대
일본은 노인 돌보는 간병 로봇에 주목
"인간지능 모방보다 특유의 강점 살리는 것이 로봇 상용화 지름길"

[조선일보 제공] 춤추는 강아지 로봇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사람 얼굴로 노래를 하는 로봇도 나와 있다. 날씨를 알려주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로봇도있다. 방바닥에는 납작하고 둥근 모양의 청소로봇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공상과학(SF) 영화의 주인공은 이런 로봇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로봇은 사람과 대화하고 물건을 가져다 주며 심부름을 대신하는 그런 모습이다. 세상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하듯, 지난달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누군가 빨리 발명해줬으면 하는 기술’15가지의 하나로 가정부 로봇(가정용 서비스 로봇)을 꼽았다. 최근 국내외에서 본격적인 가정부 로봇을 목표로 한 로봇기술이 하나 둘 선보이고 있다.

▲ 사람의 동작을 보고 배우는 로봇 도모. 부엌에서 식품을 정리하고 물건을 가져다 주는 일이 가능하다. /미국 MIT 제공


공장보다 더 복잡한 집안일

지난해 말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과학과의 앤드류 응(Andrew Ng) 교수는 부엌에서 설거지가 끝난 그릇이나 접시를 정리하는 등 집안 일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발표했다. '스탠퍼드 인공지능 로봇(Stanford Artificial Intelligence Robot)'이란 뜻의 영문 앞 글자를 딴 '스테어(STAIR)'가 바로 주인공. 바퀴가 달린 컴퓨터 모니터 본체에 팔과 손가락이 달린 형태다. 팔에는 카메라가 장착돼 손가락으로 집는 물건을 볼 수 있다.

“만찬 파티를 열었다고 생각해보죠. 손님이 마신 커피 잔을 로봇 하인이 조용히 치우고 쓰레기를 버립니다. 로봇이 식기세척기에서 설거지가 끝난 그릇까지 말끔히 정리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요.”

응 교수를 포함해 10명의 교수와 30명의 대학원생들은 스테어에게 바로 그런 일을 실제로 처리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산업용 로봇은 미리 입력된 정보에 따라 동일한 작업을 한다. 그러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로봇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 직면한다. 응 교수는“칼날 위에 부속품을 정확히 올려놓는 일은 로봇에게 이미 해결된 과제이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컵을 집어 드는 일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집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로봇에게 미리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라도 변화무쌍한 인간 생활을 모두 입력할 수는 없다.

 
스스로 배우는 로봇

응 교수는 대신 최소 정보를 준 다음 상황에 맞게 응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일단 컵과 연필, 벽돌, 책, 유리잔을 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스테어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사람이 물건을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며 사물의 3차원 구조를 분석하고 어느 쪽을 잡아야 하는지를 배웠다.

테스트 결과 스테어는 배운 대로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놀라운 것은 로봇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물건들을 제시했을 때 일어났다. 배관용 테이프가 한 예다. 스테어에게 테이프는 어찌 보면 처음 배운 컵의 손잡이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책과도 닮았다.

스테어는 처음 배운 정보를 조합해 테이프를 집어 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로봇이 적응한 것이다. 이제는 다른 방에서 물건을 가져다 주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사람의 지능을 모방한 로봇 개발도 진행중이다. 미국 MIT 인공지능연구소의 로드니 브룩스 박사가 개발 중인‘코그(COG)’가 대표적인 예다. 코그는 몇몇 간단한 감각과 운동 프로그램만을 갖춘 채‘아버지는 아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등의 상식을 축적하고 사람의 행동에 반응하면서 지능을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이 단점이다. MIT의 아론 에드싱어(Aaron Edsinger) 교수팀이 개발한 로봇 '도모(Domo)'는 스테어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 적응력을 갖추고 있다. 팔만 달린 스테어와 달리 도모는 커다란 눈에 몸통과 두 팔을 갖고 있어 훨씬 인간적이다. 도모는 두 눈으로 사람이 물건을 다루는 모습을 보고 학습한다.

예를 들어 부엌에서 식품들을 정리할 때 도모는 이전에 배운 지식을 활용해 처음 보는 물건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추론한다. 그리고 선반 위에 물건을 내려놓을 때 어느 방향으로 둬야 하는지도 판단한다. 음료수 팩을 집어 컵에 따라주는 일도 자연스럽다.

에드싱어 교수는“사람을 기준으로 집안이 구성돼 있기 때문에 로봇도 사람과 같은 몸 형태를 가져야 동작이 자연스럽다”며“눈과 두 팔은 본능적으로 사람에게 친밀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지능 대신 기존 IT기술 활용

가정부 로봇은 국내에서도 한창 개발 중이다. 그러나 전략은 다르다. 정부 산하 지능로봇기술개발 프런티어사업단의 김문상 단장은“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연구가 발달돼 있지만 대부분 대학 단위의 기초 연구에 그치고 있다”며“우리는 어떻게 하면 실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로봇은 인간보다 계산능력이 뛰어나고 센서를 부착하면 인간이 알지 못하는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굳이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지 않고 로봇 특유의 강점을 살리는 방법이 가정부 로봇 상용화의 지름길입니다.”

지난해 말 사업단은 부산 APEC에서 바텐더 로봇 ‘티롯(T-Rot)’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티롯은 사람의 말을 듣고 음료수를 가져와 컵에 따라준다. 지난 25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제협력동을 찾았을 때 티롯은 침실을 그대로 재현한 방에 있었다. 김 단장은 “티롯은 눈이나 입, 귀가 사방에 있다”고 말했다. 방을 자세히 보니 곳곳에 티롯의 눈에 달린 것과 같은 카메라들이 달려있다. 또 이곳 저곳에 마이크 겸용 스피커가 있다. 티롯은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도 방안의 카메라들이 촬영한 영상정보를 받는다.

또한 무선 인터넷을 통해 각종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물건에 각종 정보를 담은 전자태그(RFID)를 장착하면, 티롯이 보지 않고도 우유의 유통기한과 영양성분 등을 줄줄 말해줄 수 있다. 즉, 티롯 자체의 지능은 낮지만 기존 IT기술을 통해 고도의 지능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1만대의 티롯을 가사 도우미로 시범 보급했다고 생각합시다. 어떤 사람은 설거지를, 또 어떤 사람은 물건 가져다 주기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겠죠. 하나하나 로봇이 배운 집안일은 인터넷으로 공유됩니다. 곧 만능의 가사도우미가 탄생하는 것이죠.”

로봇 강국 일본은 일찍부터 서비스 로봇을 개발해왔다. 그 결과 각종 안내용 로봇과 애완 로봇이 개발돼 있다. 최근에는 실제로 인간과 교류하면서 일을 도와주는 로봇에 눈을 돌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히타치사가 개발한 ‘에뮤(Emiew)’. 두 바퀴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6㎞로 움직이는 로봇이다. 2005년 처음 발표된 에뮤는 기상정보를 알려주는 기존 서비스 로봇의 기능에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어 가져다 주는 서비스 기능도 갖고 있다. 당시 히타치는 5~6년 내에 사무실이나 작업장에서 잔심부름을 시키는 데 이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단장은 “로봇은 PC나 휴대폰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해야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시장을 노인용 수발 서비스 로봇으로 보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홀로 살 때 잔심부름을 해주고 정보를 전달해주는 로봇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고령 인구를 위한 로봇 시장에 주목했다. 그러나 최근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이나 애완용 로봇이 각광을 받으면서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주춤한 상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잘하면 우리나라가 가정부 로봇 종주국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스테어가 물건 집는 법을 배우는 모습. 몇가지 물건을 다루는 방법을 교육시키면 이를 바탕으로 처음 보는 물건을 잡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낸다. 심부름을 시키면 다른 방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기도 한다. /미 스탠퍼드대 제공 = 이영완 기자





스태플러 가져오기 심부름 하는 스테어. 간단한 몇가지 물건을 다루는 방법을 교육시키면 이를 바탕으로 처음 보는 물건을 잡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낸다. 심부름을 시키면 다른 방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기도 한다. /미 스탠퍼드대 제공= 이영완 기자





도모는 사람이 물건을 다루는 것을 보고 배운다. 다음에 새로운 물건을 만나면 이전 정보를 토대로 잡는 방법을 찾아낸다. 두 눈과 두 팔을 갖고 있어 사람에게 더욱 친숙한 모습이다. 부엌에서 식료품을 정리하는 등 초보적인 가정부 로봇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미 MIT 제공= 이영완 기자





식품들을 정리하는 도모. 사람이 물건을 다루는 것을 보고 배운 뒤, 새로운 물건을 만나면 이전 정보를 토대로 잡는 방법을 찾아낸다. 두 눈과 두 팔을 갖고 있어 사람에게 더욱 친숙한 모습이다. 부엌에서 식료품을 정리하는 등 초보적인 가정부 로봇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미 MIT 제공= 이영완 기자





솔질을 하는 도모. 사람이 물건을 다루는 것을 보고 배운 뒤, 새로운 물건을 만나면 이전 정보를 토대로 잡는 방법을 찾아낸다. 두 눈과 두 팔을 갖고 있어 사람에게 더욱 친숙한 모습이다. 부엌에서 식료품을 정리하는 등 초보적인 가정부 로봇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미 MIT 제공= 이영완 기자





인간기능 생활지원 지능로봇 기술개발사업단에서 개발한 서비스 로봇 티롯. 작년 부산에서 열린 APEC에서 사람에게 음료수를 따라주는 모습을 선보였다. 사업단은 노인의 침실에 여러대의 카메라와 스피커를 설치해 티롯의 눈과 귀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또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로봇들이 각각 배운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서로 공유해 개별 로봇의 지능을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이다. /지능로봇사업단 제공= 이영완 기자





인간기능 생활지원 지능로봇 기술개발사업단은 작년 부산에서 열린 APEC에서 사람에게 음료수를 따라주는 로봇 티롯을 선보였다. 최근 사업단은 티롯의 손동작을 더욱 자연스럽게 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개발된 손은 손가락 네 개로 문고리나 접시 등 모든 물건을 자연스럽게 잡을 수 있다. /지능로봇사업단 제공= 이영완 기자





인간기능 생활지원 지능로봇 기술개발사업단은 작년 부산에서 열린 APEC에서 사람에게 음료수를 따라주는 로봇 티롯을 선보였다. 최근 사업단은 티롯의 손동작을 더욱 자연스럽게 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개발된 손은 손가락 네 개로 문고리나 접시 등 모든 물건을 자연스럽게 잡을 수 있다. /지능로봇사업단 제공=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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