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野가 추진하는 방송법 등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유성 기자I 2024.06.22 15:10:00

여야가 바뀌면 정당 입장도 바뀌는 방송법
권력에 따른 정당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
운명의 장난? 더 강력해 돌아온 최민희·김현
여당 비호 못 받는 방통위원장의 씁쓸한 모습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국회에는 18개 상임위원회가 있습니다. 이중 이름이 긴 몇몇 상임위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입니다. 줄여서 과방위라고 하는데 한국의 과학 및 기술 산업과 방송계, 통신업계 산업 정책 입안 등을 맡고 있습니다. 기초과학부터 스타트업, 국가 R&D, 방송사와 통신 등이 망라해서 다뤄집니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폐지 논의도 이곳에서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상임위 명칭을 갖고 각 상임위에 속한 분야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은 사실 우습긴 합니다. 각각이 다 연관성을 갖고 연결되어 있고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과방위 이름에서는 ‘과학이 제일 중요하게 인식됐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 함께 국가 대계를 이끄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여당 빠진 ‘3분의 2’쪽 상임위라고 하지만 이번 22대 국회 과방위가 중점적으로 통과시킨 법이 있습니다. 바로 방송3법입니다. 곧 통과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한다면 방통위 설치법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 언론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리감독 주무부처를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라는 인식이 깔린 듯 합니다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입법청문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 강력해서 돌아온 ‘그들’

전날(21일) 과방위에는 김홍일 방통위원장이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들은 작심하고 김 방통위원장에게 질의를 했습니다. 질의의 골자는 현 2인 체체 방통위의 위법성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2인 체제의 방통위는 법리적으로 (합법이냐 위법이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조직 운영의 기준을 놓고 봤을 때는 ‘기형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명박정부 때 방통위가 위원회 형태로 생긴 이후 과반 이상의 결원이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방통위가 일반 정부 부처와 같은 독임제 형태가 아니라 위원회 형태를 갖춘 이유는, 그곳 부처 수장의 자위적이고 작위적인 정책 추진을 막기 위한 데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정부로부터 독립된 형태의 조직 구조를 갖추길 원했던 것이죠. 따라서 지금의 ‘방통위원장-상임위원장 짝짜꿍’ 구조는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통위가 2인 구조를 갖추게 된 것에는 대통령실의 책임과 함께 국회의 책임이 큽니다. 지난해 야권 추천 상임위원 후보(당시 최민희) 임명을 대통령실이 ‘국회 탓’을 하며 하지 않았고, 임기가 끝난 다른 야권 상임위원(김현)의 자리를 서둘러 채우지 않았습니다.

운명의 장난일까요, 원외 인사로 야성 강한 야인이었던 최민희 후보는 22대 국회 재선 의원으로 복귀해 과방위원장이 됐습니다. 방통위원장을 직접 호통칠 수 있는 자리에 앉은 것이죠. 김현 의원도 재선 의원으로 과방위 야당 간사가 됐습니다.

실제 지난 21일에도 검사 출신 김홍일 방통위원장은 야당 의원들의 호된 질책과 강한 압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여기에 정부부처 인사들이 기대할 수 있는 여당 의원들의 ‘쉴드’를 받지 못했습니다. 김 방통위원장의 속을 알 수 없으나, 야당 의원들은 야속하고 여당 의원들에게는 섭섭했을지 모릅니다.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입법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한 뒤 최민희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제출하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 지난해 대통령실이 최민희 당시 후보를 상임위원에 임명했다면 어땠을까요? 운명과 인연은 그래서 아이러니한가 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방통위 내 견제’를 피한줄 알았을텐데 ‘구원(舊怨)으로 가득 찬 야당 의원들의 더 강력한 압박’을 받게 됐으니까요.

권력의 속성이 드러난 방송법

정치권에서 흔히 보는 ‘내로남불’이 이 법안에 보입니다. 본인들이 야당일 때는 열심히 추진하다가도 여당이 되면 ‘모른 척’하는 전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강하게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이든, 반대하는 국민의힘이든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집니다.

방송3법과 유사한 취지의 법률안은 지난 2016년 7월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발의된 적이 있습니다. 골자는 공영방송사 사장 바꾸는 과정을 까다롭게 만들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높이자’는 취지에 있습니다.

당시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탄핵 정국이 막 시작됐던터라 당시 박근혜정부와 집권여당은 수세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야당이 집권하게 되자 ‘공영방송사의 독립성을 높이자’라는 말은 ‘쑥’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다시 나오게 됩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여의도 정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도 야당 시절에는 방송3법 등의 통과를 요구했지만, 집권 여당이 되자 거부권까지 써가며 반대하는 것을 보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정부와 정치권이 ‘공영방송의 보도 행태에 간섭하지 않겠다’라는 철학입니다. 새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그 철학을 지키려는 자세 또한 중요합니다. 제도를 망가뜨리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고 그 기저에 있는 욕망이니까요.

우리가 봐야 할 진짜 현실은?

참. 한가지 의아한 게 있습니다. 진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실’이 국회에서는 아직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생활과 유리된 채 자기들만의 논쟁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지상파 방송사 종사자들이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갈 수록 줄어드는 자신들의 매출과 영향력에 있지 않을까요? 방통위가 발간한 ‘2023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TV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한 비율은 27.2%였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수치입니다.

반면 스마트폰이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70%입니다. 젊은 연령대일 수록 이런 경향은 강합니다. 방송보다 유튜브나 OTT 등을 보는 것이죠.

방통위가 집계한 ‘2023 회계연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을 보면 지상파 방송사는 광고시장 주류의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매체별 광고시장에서 지상파 점유율은 2014년 57.4%에서 지난해 37.1%로 감소했습니다.

방송광고시장 자체도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2023년 방송광고 매출은 2022년 대비 19% 감소한 2조4983억원입니다. 2021년 반짝 개선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감소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방송사들의 수익구조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죠.

그 자리를 유튜버 등 새로운 시장 진입자들이 야금야금 차지하고 있는 것은 또 아닐까요? 팬덤을 몰고 다니는 정치인 주변에 기자들보다 유튜버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 말이죠.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