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을 계기로 교수와 제자 간 갑을관계에서 비롯된 대학 내 성범죄를 예방·근절할 수 있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성범죄 전담 상담원 배치 등의 근본·구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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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대학가에 따르면 지난 19일 제자 성추행·성희롱 의혹에 휩싸인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의 저자이자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하일지(본명 임종주·62)씨가 강단을 떠나는 등 하루 사이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된 총 세 명의 교수가 교수직을 내려놨다.
대학에서 성추문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론 학계라는 폐쇄적 구조와 스승과 제자라는 ‘갑을 관계’ 가 꼽힌다. 특히 지도교수가 교수 임용 등에 있어 절대적 영향력을 갖는 대학원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실제 서울대에서는 지난 3월 H교수가 대학원 지도 학생과 학과 조교 등을 상대로 지속적인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왔다.
차안나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교수가 권력을 쥐고 있는 대학에서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는 것은 학업과 진로 전체를 걸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학의 평판 하락을 우려한 학교 측의 소극적인 태도도 한몫하고 있다.
◇대학 내 성범죄 피해 신고센터 개설하는 등 움직임도
미투 열풍이 대학가를 휩쓸면서 대학들의 소극적인 태도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교내 성범죄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등 피해 대처를 위해 움직임을 보이는 대학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과거엔 성희롱·성폭력 예방 매뉴얼을 배포하는 등 성범죄 예방을 위한 성교육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드러나지 않은 피해사례가 없는지 직접 조사하는 등 보다 발전된 조치를 취하고 있는 모양새다.
성신여대는 지난 16일 재학생 모두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내 교내 성폭력·성희롱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피해사실을 알고 있거나 직접 당한 학생으로부터 익명으로 피해사실을 제보 받음으로써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교내 성범죄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삼육대는 지난 13일 ‘학생·교원 성희롱, 성폭력 온라인 신고센터’를 개설해 교내 성범죄 근절에 나섰다. 상시 운영중인 양성평등센터에 전문 상담인력을 배치해 피해자 신고와 심층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학생회가 주도적으로 교내 성범죄 근절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이화여대는 지난 11일 총학생회 산하기구로서 ‘학생·소수자 인권 위원회(학소위)’를 출범시켰다. 학소위는 인권침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학교 본부와 학생사회 전반에 반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학소위는 “3~4월엔 교수 성폭력 문제 해결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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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학 내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방지하려면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에 학생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대학의 교원 징계는 소극·형식적이어서 가해교수에 대한 온정주의식 처벌이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며 “대학 내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에 학생의 참여를 보장해 합당한 수위의 징계가 내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대다수 대학에 성폭력 전담 상담원이 부재해 성범죄 예방과 관련 상담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모든 대학이 전담 고충상담원을 필수적으로 지정하게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문제를 담당하는 조사위원회에 가해 교수와 친분 있는 관계자가 포함될 경우 공정성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학내 영향력에서 중립적일 수 있는 외부전문가를 참여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