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점을 찾아서]⑤대학로 김가네 '즉석김밥' 시대를 열다

김용운 기자I 2017.12.16 10:10:15

1994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1호점 개점
주문 즉시 바로 김밥 말아 판매
즉석김밥 대중화에 기여

1994년 문을 연 서울 대학로의 김가네 1호점인 김가네 대학로본점(사진=김가네)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서울 종로구 동숭동과 혜화동은 ‘대학로’라는 또 다른 지명이 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이화동 사거리까지 직선 도로 좌우 일대를 일컫는 대학로는 어느덧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대학로라는 지명은 서울대학교가 1975년 한강 이남의 관악산 아래로 이전하기 전에 동숭동에 터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서울대학교 외에도 성균관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도 있어 신촌과 함께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지역으로 손꼽혔다. 특히 대학로는 한국 공연의 메카로 명성을 쌓아왔다. 1979년 샘터 파랑새 극장이 문을 열고 1981년에 문화예술회관(현 아르코극장)이 개관한 이후 200석 미만의 소극장들이 대학로 일대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대학로는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연극을 많이 올리는 지역으로 부상했다. 지금도 대학로 일대에는 100여 개의 소극장들이 운영 중이며 일 년 내내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어느덧 일상음식으로 스며든 ‘즉석김밥’의 고향이 바로 대학로다. 주문과 함께 즉석에서 재료를 말아 만드는 즉석김밥은 이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메뉴가 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전에는 즉석김밥이란 개념이 사실상 없었다. 대부분의 분식집에서 김밥은 오전에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손님들에게 파는 메뉴에 불과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 성균관대학교 방향으로 200여미터 남짓 올라가다 보면 창경궁로가 나온다. 그 길 모퉁이 1층 상가에는 10평(33㎡)규모의 작은 분식집이 있다.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인 김가네의 1호점인 김가네 대학로본점이다. 1994년 문을 연 김가네 대학로본점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메뉴가 바로 즉석김밥이다.

2017년 12월 현재 서울 대학로 김가네 대학로본점의 내부 모습. 리모델링을 통해 초창기 매장 모습과는 다르다(사진=김용운 기자)


김가네는 1992년 김가네의 김용만 회장이 대학로에서 낸 분식집에서 시작됐다. 김 회장은 김밥을 오전에 만들어 놓지 않고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김밥을 말아서 내놓았다. 또한 김밥 마는 과정을 손님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김밥 조리대를 창가에 설치했고 매장 창문 위쪽에 환풍기를 달아 김밥용 밥을 참기름으로 비비는 고소한 냄새가 거리로 퍼지도록 했다.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손님이 몰렸고 마침내 1994년 ‘김가네’라는 간판으로 대학로본점을 내면서 김 회장은 본격적인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 들었다.

김가네의 즉석김밥은 여러모로 혁신적이었다. 김밥은 어머니가 싸주시는 소풍 음식이자 분식집에서 즐겨 찾는 메뉴였지만 김밥 자체에 대한 조리법은 비슷비슷했다. 김가네 대학로본점은 먼저 김밥 토핑기를 제작해 김밥의 재료를 다양화했다. 소고기와 단무지, 시금치와 계란, 소시지 정도만 들어갔던 김밥 속에 치즈와 참치, 볶은 멸치와 고추 등 재료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김밥 메뉴를 개발했다.

또한 주문과 동시에 손님 앞에서 바로 김밥을 제조하는 모습을 통해 호기심을 유발하고 위생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단순히 길거리 음식으로 치부되거나 간식 정도로 밖에 취급당하지 않았던 김밥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외식의 주요 메뉴로 위상을 굳힌 데에는 김가네에서 시작한 ‘즉석김밥’ 제조법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17년 12월 현재 서울 대학로 김가네 대학로본점 외부 모습. 리모델링을 통해 초창기 매장 모습과는 다르다(사진=김용운 기자)


김가네 대학로본점의 김밥은 대학로의 특성과도 잘 맞았다. 가난한 연극인들이 상주하고 있는 대학로는 신촌이나 강남 일대에 비해 저렴한 외식 메뉴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김가네의 즉석김밥은 당시 2000원의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훌륭한 한 끼였다. 우엉, 당근, 지단, 시금치, 어묵, 햄, 맛살, 단무지 등 8가지 재료를 두툼하게 말아 한 줄만 먹어도 포만감이 들었다. 포장 판매 시에도 은박지가 아닌 종이상자에 담아내 저렴한 김밥이란 이미지를 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김가네 즉석김밥은 연극인들 사이에서도 인기였다. 단체주문이 이어졌고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김가네 대학로본점은 덕분에 23년이 흐른 현재에도 성업 중이다. 김가네는 자체 물류망을 갖추고 전국에 450여 개에 이르는 가맹점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가네의 등장으로 김밥은 즉석김밥이 대세가 되었고 김밥의 고급화와 다양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누구나 만들 수 있어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김밥이란 메뉴를 발상의 전환과 혁신을 통해 어엿한 외식 카테고리로 자리 잡게 된 시발점이 김가네 대학로본점, 바로 김가네 1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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