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연구원은 23일 발표한 ‘통화승수 하락의 원인과 시사점’에서 한국 경제가 ‘유동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통화승수가 2008년 이후 추세적으로 하락세를 보여왔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통화승수가 하락한 원인이 예대율 규제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2월 감독 당국이 대출액을 예금액의 100% 이하로 낮추면서 금융기관들의 대출 여력이 크게 줄었다는 설명이다. 시중은행의 예대율은 2008년 6월 127.1%에 달했지만 2014년 9월 97.3%까지 떨어졌다.
장기적인 경기부진 탓에 안전한 자금관리를 추구하는 성향이 나타나는 점도 통화승수 하락 원인으로 꼽힌다. 은행들은 리스크가 높은 중소기업대출보다 안정적인 대기업 대출을 선호하며 신용 창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은행의 총 대출금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2007년 1분기 62.9%에서 2014년 3분기 69.8%로 증가했다. 반면 신용대출 비중은 24.0%에서 18.6%로 감소했다.
2010년 77.3%를 기록했던 가계 평균 소비성향도 2013년에는 72.9%까지 떨어졌다. 보고서는 전세가격 상승, 고령화 및 노후대비 부족, 과도한 빚 부담을 원인으로 꼽았다. 기업들도 위기에 대비해 투자보다는 현금 보유를 늘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의 현금유보율은 2008년 712.9%에서 2014년 상반기 말 1092.9%까지 증가했다.
김천구 현대연 선임연구원은 “금융기관들의 리스크 회피현상을 줄이고 과도한 여신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담보가 부족하거나 일시적으로 신용도가 낮아진 경제주체들에게 적절한 대출이 이뤄지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중소기업 여신에 대한 신용보증 확대 등 민간 금융기관의 위험을 분담하는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