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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rd SRE]성공신화 '흔들' 이랜드, 돌파구 마련 시급

김기훈 기자I 2016.05.16 07:40:18

M&A 후유증에 中 패션사업 고전 '이중고'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1980년 이화여대 앞 2평짜리 옷 가게에서 출발해 매출 10조원대 국내 패션·유통 대표기업으로 우뚝 선 이랜드의 성공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이랜드하면 떠오르는 공격적인 기업 인수·합병(M&A) 전략은 재무구조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고 성장세를 이끌었던 중국 패션사업은 현지 경기 부진과 유통채널 변화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고전하는 모습이다.

이랜드는 위기 탈출을 위해 ‘30년 비상장’ 고집을 꺾고 계열사 상장과 자산매각을 통한 돌파구 마련을 꾀하고 있지만 크레딧시장의 의심 섞인 눈초리는 쉽사리 변하지 않고 있다. 22회에 이어 23회 SRE 기업별 등급 적정성 설문에서 2회 연속으로 이랜드를 최상위권에 올린 것이 단적인 예다.

이번 SRE에서 이랜드그룹의 지주사와 중간지주사 역할을 각각 하는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의 신용등급이 적정하지 않다고 응답한 전문가는 총 응답자 141명 중 35명(득표율 24.8%, 5개 이내 복수응답 가능)으로 전체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직전 SRE에서 17.0%의 표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득표율과 순위 모두 높아지면서 갈수록 커지는 시장의 불신을 확인했다.

설문집단별로 보면 22회 SRE 당시보다 크레딧애널리스트의 시선이 눈에 띄게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이랜드 등급에 이의를 제기한 크레딧애널리스트가 27.7%(22회 15.9%)로 22.4%(22회 17.7%)를 기록한 채권매니저·채권브로커 등 비 크레딧애널리스트를 앞섰다. 한 SRE 자문위원은 “이랜드그룹 차원에서 현 위기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장 위험하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시간이 갈수록 신용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부담감은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성수 회장이 40.59%의 지분을 보유한 이랜드월드가 대부분 계열사를 직·간접 지배하고 있는 이랜드그룹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소패션업체에 불과했으나 2004년과 2006년 뉴코아와 까르푸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M&A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2014년 말 사이에는 무려 24건의 M&A를 성사시키며 자타공인 M&A 시장의 공룡으로 등극했다.

이런 과감한 M&A 전략은 이랜드그룹을 재계 40위권까지 끌어올리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지만 그만큼 후유증도 컸다. M&A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외부 차입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며 재무구조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이랜드그룹의 순차입금은 2014년 말 4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5조5000억원으로 1년 새 9000억원 증가했다. 다만 주력 계열사가 아닌 비주력 계열사들의 만기구조가 상대적으로 단기화돼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당장 유동성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주력사업의 경쟁환경 변화로 그룹 전반의 수익 창출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면서 차입금 상환 여건이 나빠지고 그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랜드그룹 계열사들이 금융비용으로 지출한 금액만 2500억원에 달한다. 이랜드월드 국내 패션사업부문의 작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넘게 줄었다. 주력 브랜드인 뉴발란스의 영업이익률이 전년보다 6.7%포인트 감소한 영향이 컸다. 경제성장 둔화, 민간소비 위축 등 거시적 여건 악화와 더불어 브랜드 자체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다른 대표 브랜드 실적도 저하되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캐시카우(현금창출원) 노릇을 해오던 중국 현지법인의 실적 둔화다. 중국 법인 3사 합산 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마진 추정치는 2011년 17.2%에서 지난해에는 8%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고공 행진을 펼치던 중국 경제 성장세가 주춤한 것이 일차적인 실적 둔화 배경으로 꼽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백화점에서 할인점과 온라인 구매로 옮겨가는 중국 패션 유통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룹 전체 실적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이랜드그룹의 세전영업이익(EBIT)/매출은 2014년 9.8%에서 지난해 5.9%로 떨어졌다. 실적 악화와 재무부담 확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이랜드를 향해 신용평가사들도 연이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정기평가에서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의 무보증사채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하고 이랜드파크의 기업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강등했다.

자사를 둘러싼 우려의 시선이 점차 강해지면서 그간 자금 조달 수단으로 주로 이용해오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마저 어려운 지경이 되자 다급해진 이랜드는 투자정책을 보수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고 핵심 계열사 기업공개(IPO)와 보유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를 서두르고 있다.

뉴코아·2001아울렛을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의 상장과 이랜드패션차이나홀딩스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를 추진하는 한편 킴스클럽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미국계 사모투자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선정했다. 핵심점포인 뉴코아 강남점 토지와 건물 매각도 논의 중이다. 한국신용평가는 킴스클럽과 뉴코아 강남점을 묶어 1조4000억원 넘는 금액에 팔아야 이랜드월드와 이랜드리테일이 현 신용등급 수준에 들어맞는 재무구조를 달성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랜드의 재무개선 노력에 대해 시장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랜드는 과거에도 몇 차례 계열사 상장을 시도하다가 이를 돌연 철회한 전례가 있다. 이경화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이랜드리테일은 주관사를 선정한 상태지만 상장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실제 실현 가능성이 불확실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그간 숱한 재무구조 개선 압박 속에서도 국내 27개 계열사 중 단 한 곳만이 상장돼 있을 정도로 그룹 오너인 박성수 회장은 외부주주 간섭을 극도로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설사 이랜드가 진심으로 계열사 상장과 자산 매각을 추진한다고 할지라도 투자자를 제대로 모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이 많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3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문의: st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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